한국사람이 한국말 못하면 한국사람 아니다
4살 때 손잡고 인도네시아로 온 아들이 유치원 2년 다니고 졸업할 때쯤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우면서 “ 돈 100원 만났다” 하고 소리쳤다.
초등학생이던 딸아이 둘도 2년 후 중학생이 되자 집에서 한국말보다는 인도네시아말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어머나, 이거 잘못하다간 이름만 한국인이지 인도네시아 아이들로 키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인도네시아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면서부터 우리집에서는 한국말로만 대화하도록 규칙을 정해 놓고 인도네시아 말은 금지시켰다. 만약에 아이들 중에서 누가 인도네시아말 하다가 들키면, 그날은 셋다 불러놓고 “ 너희들이 아무리 외국어 잘해도 한국어를 못하면 그건 한국사람이 아니다. 한국말을 잘해야 외국어도 잘한다.” 는 말을 타이어에 바람 넣듯이 주입시켰다.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 마칠 때쯤이면 나는 1학년인 아들학교로 갔다.
12시에 수업 마친 아들을 차에 태워서 교복 갈아입히고 밥 먹여 가면서 한글공부 시키러 갔다. 그곳 이웃도시(수라바야)에 가면 한인교회가 있고 그곳에서 토요일마다 한글학교가 열린다. 귀중한 한글수업 3시간 공부시키기 위해 나는 왕복 5시간의 거리는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일 년 동안 그렇게 다녔다. 2년째 되던 날부터 한글학교에서 아들은 배우고 나는 다른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아들과 함께 3년을 다녔다. 햇수로만 3년이지 방학빼고 공휴일과 명절 빼버리면 실제로 공부한 숫자는 꼬박 4달 정도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들에게는 숙제도 꼬박꼬박했고 일기도 적었으니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4학년 되면서 인도네시아학교수업이 길어지자 더 이상 한글공부 하러 갈 수가 없었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날이었다.
일요일에 학교에 간다기에 왜 가는지 물었더니‘성교육' 받으러’ 간다는 말을 '섹스 하는 것' 배우러 간다고 표현했다. 한참동안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웃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건 웃을 일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백방으로 한국어 가르쳐
줄 선생님을 찾았다. 우리도시에서 한국어선생님 찾는다는 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더 어려웠다.
독서를 꾸준히 한 덕분에 고등학생 때 월간 ‘좋은 친구’ 책자에 학생기자가 되어 달마다 원고를 제출했다. 큰 딸은 대학교 다니면서 이곳 현지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원어민교사로 한국어를 일주일에 8시간씩 무료로 가르쳤다.
어찌하여 한국어 가르치는 사람을 만났다. 일주일에 두 시간만이라고 배울 수 있을까 하여 엄마로서 아들의 환경을 입이 아프도록 설명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학생들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봉사단원으로 나왔기에, 한국어를 한국 사람에게 가르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있다고 미국인과 영어레슨 비용보다 더 많이 요구하면서 그 돈으로 인도네시아학생들에게 봉사활동으로 쓰겠다고 했다. 그 봉사단원의 취지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그 '봉사활동'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왜 그리 씁쓸하게 들리든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재외동포자녀들에게 한국어를 도와 주는 일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 살고 있는 나라, 더 많은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조국을 알려 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세계적으로 알리려면 국내에 있는 사람을 외국으로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나가서 살고 있는 700만 재외동포들을 통해서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주장하고 싶다.
외국에 살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재라도 지원받을 수 있는 여건이면 좋겠다.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려는데 이렇게 힘들어서........ 환경도 탓하고 싶었고 내 조국도 탓하고 싶었고 멀쩡하게 맑은 하늘도 탓하고 싶었다.
우리 한글은 창조하신 세종대왕이 정말 자랑스럽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바우바우시의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문자로 사용하게 된 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 엊그저께 한 프랑스대학생이 한글문자 사용하는 찌아찌아족에 대하여 논문을 쓴다고 인도네시아뉴스에서 읽은 적 있다.
작년 이맘때쯤 한인자녀들에게 한글선교하러 온 아가씨를 만났다. 우리 아들에게는 그야말로 경사난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두 시간씩 공부를 했다. 제법 진도 나갔고 얼마 전부터는 인도네시아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걸 공부한다고 했다. 선생님과 정도 들었다는데 정들자 이별이라고 오늘이 한글공부 마지막 수업이었다고 한다. 그 아가씨선생님은 내일 한국으로 귀국하여 결혼할거라고 했다. 결혼한다는 사람 붙잡을 수도 없고 아쉽고 아쉽다만 " 선생님 잘 가세요. 토끼해 결혼해서 토끼같은 자식들 낳고 행복하게 사세요."
2010년처럼 한국어선생님은 그렇게 떠났다.
2011년이 새로 다가오듯이 한국어선생님도 새로 만날 수 있는 복된 한해가 되길 엄마로서 나는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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