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한 날 마음으로만 싸던 보따리여행
배낭여행은 배낭을 메고
무전여행은 돈 없이 그렇다면,
내가 가는 보따리여행은 보따리를 들고 갈까?
우중충한 날씨, 소나기 내리기 위해 휘몰아치던 바람의 몸짓을 보고 마음이 설레던 내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되면서부터 그런 날씨는 나에게 삶아 빤 기저귀를 걷어야 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기저귀 빨아 너는 시대가 지나자 나는 여행하고 싶었고 허구한 날 마음으로 보따리를 쌌다. 그러나 한 번도 문턱을 넘어 대문 밖으로 외출을 해보지 못했다.
중년 여인이 된 나는 더욱더 여행이 하고 싶었다. 지금 내 생활은 한 달에 보름 이상은 집을 떠나 오지로 여행하며 살고 있다. 그런 사람이 무슨 여행이 더 하고 싶어 마음의 보따리를 싸나 하겠지만, 돌아다녀 보았기에 마음 편한 친구와의 여행이 더욱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친구도 나도 삶의 테두리를 벗어 나 본적 없이 살아왔던 것이니까.
발리로 가기위해 자카르타공항에서 한참 기다렸다. 공항 내 대기실에는 간간히 빈 의자가 있었고 나는 그 틈새를 자리 잡아서 앉았다.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불어오지 옆에서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얼굴에 닥쳐왔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공항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혼자라면 외로웠겠지만 둘이라서 즐거웠다. 게다가 바람이 간간히 얼굴을 간지럽게 해 주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리, 그랜드발리 비치(Grand Bali Beach) 그 호텔은 내가 자주 머물렀던 호텔이다. 오래전부터 추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다가 보이는 가든에 나는 머물렀다. 가든에서 해변까지는 스물 발자국 정도만 걸으면 된다.
별과 달빛이 흘러내리는 해변에서 파도를 보았던 지난날 추억들, 그때의 나눴던 언어들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해변으로 나갔다.
해변의 풍경은 은은한 달빛은 여전히 야자나무 사이로 흘러내렸고 고기잡이배들도 예전처럼 여러 척 놓여 있었다. 배 사이사이에 검은 물체들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물체들이 움직였다. 그건 연인들이 서로 엉켜 붙어 있었던 것이다. 야자나무 아래도 연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참 좋을 때다. 그들이 나누는 키스가 참으로 달콤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날 밤, 나는 해묵은 추억위에 친구와 새로운 추억으로 덮어쓰기를 하고 돌아왔다. 이제 나는 훌쩍 떠나고 싶어 마음의 보따리를 싸는 일은 한참동안 없을 것 같다.
별과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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