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노인 마을로 가서
별과달
초행길이라 지역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가 잘못 알려주는 사람 때문에 우리는 늦은 밤에 도착했다. 나는 마중나온 촌장과 만나자마자 악수를 나눈후 할머니가 정말 그 연세가 맞는지 물어왔다. 촌장은 그렇다고 했고 OKU군 인구센서스팀에서도 그렇다고 인정하는 정보를 귀띔해 줬다. 험난한 길을 거쳐 딴중마스(Tanjung Mas) 마을에 도착했고 할머니를 만났다. 뚜리나할머니를 뉴스기사로만 봤지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157세인가 싶을 정도로 정정했다. 할머니는 1853년 5월 5일 동부자바 점버르(Jember) 출생이었고, 아버지네덜란드인과 인도네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당에서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고 계시던 할머니는 우리를 보더니 아주 반가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는 조금 남은 오리먹이통을 내동댕이치듯 내던져버리고 내 손을 잡았다.
할머니와 무슨 이야기부터 나눌까 망설이다가 가방 안의 촬영구성안을 꺼냈다. 몇 장 넘겨보는데 할머니는 다가봐 들여다보시더니 며칠 전에 꾼 꿈이라며 이야기하셨다. '비행기가 날아가다가 우리 집에 어떤 서류를 떨어뜨렸는데 주워보니 알파벳이 아닌 이상한 글자들이었다. 도대체 이것이 뭘까, 하고 며칠을 두고 생각했는데 오늘 내가 도착했고 그때 본 글자가 바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런 글자였다'며. 그 꿈이 바로 이런 일을 예견하였구나 하면서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었듯이 즐거워하며 웃으셨다. 그런데 이가 없었다. 정말로 하나도 없었다.
157세 할머니 빨래하는 모습
마을에서 구십대 넘은 장수노인들 모두 만나고 싶다며 촌장에게 부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여섯 분이나 되었다. 마을 회관에 나란히 앉아 계시는 모습이 꼭 노인대학교 학생들이 미팅하는 분위기였다. 한편 내 마음은 친정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우리 엄마와 아버지를 만났고 큰아버지와 삼촌, 고모를 만난 반가운 감정이 시골의 풀 냄새처럼 내 심장 속으로 스며들었다. 노인들과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참 좋다. 그러나 청각이 둔해지는 분들이라 목소리를 높여하기 때문에 금방 피곤해진다. 올해 100세 되는 할머니는 뽀얀 피부에 곱게도 늙으셨고 웃을 때 역시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 옆의 할머니께 이런 질문과 대답을 들었다.
이제 할아버지들 차례였다.
" 뚜리나(Turinah)할머니를 맨 처음 만났을 때와 장수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내가 젊었을 때 처음 봤었지, 그때는 남편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할머니였지. 장수비결은, 글쎄 분명 비결이 있는 것 같은데 혼자만 알고 우리들에게 알려주질 않아“
그러자 돋보기를 낀 옆의 할아버지가 맞장구를 쳤다.
" 그래, 맞아! 그 할머니는 인기가 많았지, 자신을 잘 꾸미고 다녔지.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할머니의 과거에 약간의 미련 같은 걸 회상하면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하고 나는 또 질문했다. 내 경험으로 보면 노인들은 인사 잘하는 사람도 좋아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해 주는 사람도 좋아하셨다.
" 그럼, 할아버지처럼 구십이 넘어도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그야 나를 창조해주신 분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몸을 돌보고, 매일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야 해! 나는 이제까지 해보다 늦게 일어난 적이 없어!"
뚜리나할머니는 집에서 운동 겸 소일거리를 찾아 하는 분이었다. 오리에게 먹이도 줬다. 땀 냄새로 얼룩진 옷은 빨래하여 꼬부랑해진 허리와 함께 빨랫줄에 잘 펴 널었다. 집 앞 텃밭에 심어 놓은 빠레(Pare)는 치매예방효과가 있어 야채와 볶아 즐겨 드신다고 했다. 수세미 같기도 하고 오이 같기도 한 모양의 빠레를 따서 한입 베어 물면 맛은 찔레처럼 상큼하면서 쓴맛은 혀끝을 휘감았다. 그렇게 식사한 그릇 설거지까지 하셨다. 할머니의 시력은 좋은 편이었다. 예전에는 한 번 만에 실이 바늘귀구멍으로 쑤욱~ 들어갔는데 이젠 일곱 번은 해야 된다며 옛날을 걸려 이야기해 주셨다.
촬영을 마칠 쯤, 할머니의 집에서는 마을 사람들과 우리 제작진에게 점심을 준비해줬다. 동네 사람들은 다 같이 맛있게 먹었지만 우리 그러지 못했다. 그들을 찍어야했으니까. 그런데 우리 셋 촌장, 제작진 그리고 나를 위해 따로 상을 차려줬다. 정성은 가득했지만 나는 도저히 먹고 싶은 맘이 없어 야자수를 많이 마셔 배가 불러 못 먹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제작진도 동장도 나와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주 섭섭한 표정을 지으시며 ‘우리 집에서 밥 한끼라도 안 먹으면 나는 남은 촬영 안하다.“고 하셨다. 저런 수법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하는 수법인데....... 나는 촌장에게도 제작진에게 할머니의 마음을 설멸해 주고 조금 먹는 시늉이라고 하자고 했다. 그래도 나는 우물가에서 본 청결에 대한 풍경이 눈에 지워지지 않아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할 수없이 나는 계란 후라이 된것과 생콩 두 줄기만 집어 양념에 찍어 먹었다. 역시 할머니들의 사랑은 노인들의 사랑은 참으로 따뜻하고 깊구나. 하고 느꼈다.
157세 할머니는 떠나오는 나에게 손잡으시고 꼭 자기처럼 오래살아야 오래 살아도 그냥 오래가 아니고 건강하게 오래살수 있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도 건강하게 더 오래 장수하세요". 하고 인사했더니 참 좋아하셨다. 등이 굽어지 노인들은 진실하다. 그 진실을 웅켜잡은 이 세상의 모든 노인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하는 것이 내 진실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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