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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취재.촬영/JTBS- 8채널

오지로 가다가 수렁에 빠질뻔 했던 일

이부김 2010. 7. 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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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로 가다가 수렁에 빠질뻔 했던 일

       

                                                                               별과달

      수마트라 섬 남부지방 빨렘방 근처, 일세기반을 지낸 할머니가 계신다기에 물어물어 찾아갔다. 가도 가도 십리 길이었다. 낯선 도시를 몇 개나 지나갔다. 길을 비켜주지 않는 염소떼를 만나 지나가길 기다려 주기도 했다. 어둑해지는가 싶더니 금세 깜깜해졌다. 가느다랗게 놓인 시골길을 자동차가 휙 하고 지나가면 어둠들은 다칠까봐 저만치 물러섰고, 길섶의 풀들이 불빛에 흔들려 도로가 흐느적거리는 것 같았다. 어둠속의 좁은 도로가 움직이는 건 흡사 진흙속의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스릴 있었다.

       

      빨렘방(Palembang)에서 할머니계신 마을까지 7시간이면 된다고 촌장이 알려줬는데 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장장 10시간이나 걸렸다. 달빛은 아까부터 대문 앞 야자나무에 내려와 있었고 촌장 집안마당에 돗자리하나 깔아두고 우리는 둘러앉았다. 시골 마을에 외국인들이 왔으니 구경거리라 여겼던지 늦은 시간인데도 마을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갑자기 마을회의가 시작된 듯 시끌벅적했다. 촌장은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선 지역은 수마트라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우범 지역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트럭 한대가 길가 구멍가게 주인에게 길을 물었고 알려 준대로 갔더니 사방이 고무나무 밭이라 헤매던 중 갑자기 여러 명이 나타나 봉변을 했단다. 트럭기사 두 사람은 옷가지마저 빼앗긴 채 알몸으로 고무나무에 묶여 있던 걸 나무수액 받으러 갔던 인부들에 의해 구출되었고 트럭과 물건은 공중분해 되었단다. 우리도 그랬다. 기사는 그냥 길을 묻기가 뭣했던지 음료수 사면서 길을 물었다. 남자 둘이서 길은 좀 어설퍼도 훨씬 지름길이고 웅덩이 몇개가 있는데, 길 어설픈 것이 자기네 탓처럼 미안해 하면서 알려줬다.

       

      그들의 친절이 귓가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여자의 직감이랄까, 자꾸만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나는 촌장에게 전화 걸어 운전기사를 바꿔줬다. 기사는 전화 끊자마자 도로 중간에서 차를 휙돌려 촌장이 일러준대로 찾아 왔던 것이다. 그곳에서 음료 파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아주 친절하게 외진 곳으로 가르쳐 준다. 그런 후 인적이 드문 곳에 하릴없이 노는 일당들에게 차량에 대한 정보를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촌장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니 순간 길을 가르쳐주던 서른 중반의 남자들, 온몸에 친절과 스마일이 가득하던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섬뜩했다. 그러나 수렁에서 빠져나온 희열과 또 감사한 일은 운전기사가 사 마신 음료수에 그들이 뭘(?)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정이 가까웠지만 마을 사람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늦은시간 귀찮았을 터인데 촌장부인이 저녁상을 차려왔다. 밥과 면볶음과 끄루뿍(식사후 입가심으로 먹음) 그렇게 차려진 걸 보고 제작진은 의아하더니 왜 반찬없어 먹죠?” 하며 나에게 물었다. 배는 고프고 먹자는 식욕이 없고 안 먹자니 차려 준 성의가 미안하고 두어 숟갈 떴다. 마을사람들은 우리가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눈동자가 따라 왔다. 우리에게 뭐가 그리 궁금한 것이 많다고 이것저것 질문도 해왔다. 나와 제작진이 한국말로 대화하면 몇마다 따라하다가 낄낄거리며 웃었고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에게는 신기롭기만 했다.

       

      산아래 마을에는 어떤 사람이 뭘먹고 살아갈까 늘 궁금했었는데 그런 집에서 하룻밤 묵었다. 마당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반딧불벌레가 날아 다녔다. 새벽녘에는 모기들이 그만 자고 일어나라고 아무데나 마구 간질이던 그런 밤을 보내고 맞이하는 햇살은 그 어느날 보다 더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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