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동안 우리 아들에게 형이 돼 줬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인도네시아 프로축구 말랑시팀(Persema)의 용병 박철형선수였다. 늘 동생이 없었는데 형이 되어서 너에게 선물을 사 줄 수 있어 좋아라고 말하던 박철형선수, 나도 형이 생겼어 라며 좋아하던 아들 이제 시즌이 끝나고 잠시 한국으로 휴가를 떠난다기에 어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박철형선수를 알게 된 경로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내 블로그를 만나게 되었다며 그의 와이프가 내게 연락을 했었다. 게다가 남편이 있을 축구팀이 말랑시에 있다니까 더더욱 반가웠던 모양이었다. 처음에 그의 와이프는 어떤 분들에게 그런 이야길 들었는지 몰라도 인도네시아가 상당히 위험하고 더군다나 시골인 말랑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되는 것처럼 알고 있었다. 그런 빗나간 지식 같은 고정관념을 바로 잡아주기 위한 한마디의 말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박철형선수부부
박철형선수가 처음 우리 집에 인사 왔다갔던 날, 아들은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하는지 내게 물었다. 결혼했으니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고 나는 열흘간 출장 다녀왔었다. 그리고 아들의 전화통화 내용을 아들이 삼촌이 형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이유는 ‘삼촌’은 늙어 보여 ’형‘이라 불러’라고 하더란다. 태어나서 ‘형’이라고 불러보는 것이 처음이라는 아들, 누나들도 좋지만 형이 있다는 것이 좀 더 편하고 좋은 것 같다던 아들, 그러면서 나도 형처럼 좋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형이 되어야지 하던 아들, 이번에 한국에 갔다 오면 한솔이 너 형에게 인도네시아 말 가르쳐 줘 하던 박철형선수.
외국에서 같은 나라 사람만난 박철형선수도 반가웠겠고 늘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생활하다가 갑자기 한국 형이 생겼으니 좋아하던 아들, 왜 어른들이 낳기 힘들어도 형제가 많으면 좋다고 했는지 아들을 보니 알 것만 같다. 같은 문화 같은 민족은 이래서 잠시 만나도 벽을 허물고 살아갈 수 가 있구나. 함께 밥을 먹으면 식구가 되고, 함께 배우고 경험하면 벗이 된다던데 이렇게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 같은 느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아침에 오늘 밤 한국으로 가는 밤비행기 탄다면서 전화 왔다. 말랑의 모든 환경이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인지 인도네시아 전국을 원정 경기하러 다녀보고 더욱 알게 됐다던 웃던 모습, 한국에 가서 쉬면서 체력도 단련하고 한 달 후 더 강하고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바라면서 박철형선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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