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 섬 와메나공항 ▲
“ 저 한국에서 온 피디분이죠?”
“ 김성월선생님 맞습니까?”
“ 네, 맞아요.”
악수를 나눈 후 가방들은 운전기사에게 받으라하고 공항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차안에서 피디는 말했다.
“ 전 아까 봤는데 선생님 아닌 줄 알고 그냥 지나쳤어요. 이렇게 젊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전화통화 했을 때 제가 상상하기로는 오십대 후반......”
“목소리가 어른(노인) 같아서 전화 통화 때 어른대접 많이 받습니다. “
피디는 말을 계속이었다.
“ 전화통화로 상상했을 때, 짧은 파마머리에 엉덩이 펑퍼짐하고 헐렁한 몸빼바지 걸치고 다니는 이웃집 아줌마인줄 알았어요. 그래서 지사제랑 신경통약까지 챙겨왔어요.”
나는 그런 소리를 여러 사람들에게 십년 전부터 줄곧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도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신경통약까지 챙겨왔다는 피디 말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동 중 도로에 전복된 차를 보고서 피디가 하는 말
“ 에헤 저 차 뒤비져가 동태(바퀴)가 하늘보고 뱅뱅 돌아가네. 저래가 어야노”
나와 둘 다 경상도사람인데 피디는 경상도 사투리가 어찌나 심한지 대화를 나누면 문득문득 고향의 옆집 오촌 아저씨들이 떠올랐다. 좁쌀영감처럼 자상하고 재미있는 피디덕분에 지루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취재촬영 가는 곳은 파푸아(PAPUA)섬이다. 파푸아는 인도네시아 섬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바 섬인 자카르타와는 두 시간 시차를 두지만 한국과는 같다. 그곳은 이슬람사원이 곳곳에 우뚝 선 자바 섬과는 달리 오래전부터 외국(네덜란드. 미국. 독일. 인도네시아)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슬람이 아닌 그리스찬들이었다. 물리면 죽음내지 3개월을 고생한다는 말라리아모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곳이다. 목재 채소 외에는 대부분 자바 섬에서 조달되어 물가가 몇 배로 비싸다. 뿐만 아니라 만년설이 있는 곳이며 아직도 숲속에는 식인종도 있다고 하며 현재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원하며 가장 오지다.
수라바야(Surabaya)에서 밤 11시경 출발하여 파푸아(Papua)섬 선따니(Sentani)에서 도착하니 아침8시였다. 조그마한 비행기를 타고 한시간 더 산속으로 들어갔다. 보딩패스에는 시간과 좌석이 기재된 것이 아니고 그저 자신들이 알 수 있는 승객들 숫자와 색깔로 표시해 두었다. 탑승 시간되면 “ 와메나(wamena)로 가는 빨간색 보딩패스 승객들은 탑승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방송했다. 비행기는 조정실에는 모르겠고 남자 승무원 1명과 승객 17명을 태울 수 있는 비행기 좌석도 시내버스처럼 마음대로 앉으면 된다. 와메나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밖에는 철장을 부여잡고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나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맨 처음으로 만난 할아버지가 인터넷으로 보던 꼬때까(koteka)차림이었다. 반은 신기하고 반은 무서웠다. 우리 도시에서 홀라당 벗고 다니던 늙은 거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가 낯설은 곳으로 취재 용기를 가진 것은 딸아이 친구아빠가 ' 자신의 부하직원이 나를 도와 줄 것이다'고 했기에 나는 그분에게 연락하였고 호텔에서 기다렸다. 정오 때 조금 후에 오겠다던 분이 저녁 7시경에 도착했다. 그분은 자야뿌라부군수님이었고 촬영에 많은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다. 부하직원들과 차량과 그외 것들까지 함께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군수님을 비롯한 부하직원들까지 모두 크리스찬들이서 일요일 교회마치고 일이 진행되었다. 자야뿌라 곳곳에 군인들과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관공서차로 이동하였기에 모든 것이 순탄했다.
와메나의 모든 것은 비행기로 운송된다. 카르고도 인도네시아 전국에서 3번째로 물량이 많다. 그래서 물가는 비쌌다. 볶음밥 값이 자바섬보다 4배나 더 비쌌고 경유또한 5배나 더 비쌌다. 시멘트 한포대 가격은 무려 100$까지 했다. 그러나 애연가들이 많은 인도네시아, 담배값은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았기에 공항안 대기실에도 눈이 따가울 정도로 담배연기들이 자욱했다.
와메나는 국법도 중요하지만 풍습법이 더 강하다. 군수님 차가 횡단하는 암퇴지를 치어죽였다. 그들은 암퇴지의 젖꼭지 하나에 얼마씩 계산하여 군수는 돼지 한마리 값으로 천만(1000$)루피아 을 갚았다고 한다. 외부인들이 잘못하였을 경우 원주민들의 요구대로 국법보다 훨씬 무거운 풍습법을 따라야하고 또 국법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날씨는 선선한 가을날씨였다. 노랑코스모스들이 잔뜩 피어 있었고 호텔 창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밤바람은 아주 선선했다.
.
'TV 취재.촬영 > 취재 현장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라리아 그리고 움막집 (0) | 2010.03.04 |
---|---|
다니족의 수로바(suroba)마을과 소금물 (0) | 2010.03.02 |
원유정제와 판매 허가난 불법 (0) | 2010.02.16 |
워노쫄로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요 (0) | 2010.02.16 |
녀삐가 되면 쇠고기 먹어요. (0) | 2010.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