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졸업논문에 김밥 싸야하는 엄마
별과달
딸아이가 졸업논문세미나 발표준비로 분주하다. 인도네시아의 대학교에서는 졸업논문에 앞서 논문세미나 발표가 있다. 다른 학생들 논문세미나에 네 번 참석해야만 자신의 논문세미나 발표할 자격을 얻어 논문을 쓸 수가 있다. 논문세미나 프로그램에는 담당교수님이 둘, 참석학생이 스물다섯 명이라고 한다. 논문세미나 발표자는 그날 참석자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다.
다른 사람들 논문세미나에 참석해 보니 학생들에게는 ‘꼬딱(도시락)’이라는 걸 나눠 주고 교수님들에게는 조금 더 나은 메뉴 빵이었다고 한다. 딸아이가 집으로 가져 온 꼬딱(Kotak)의 내용물을 보니 너무 빈약했다. 흰밥 몇 숟가락에 볶음라면 열 가닥 정도 오이 두 조각과 고추를 갈아서 만든 양념뿐이었다.
다음 날 딸아이가 말했다. “ 엄마 오늘 담당교수님이 ‘상아 난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고 주문하셨어. "
한국 음식 중에 도시락처럼 나눠줄 수 있는 음식은 김밥뿐이었다.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의 김밥을 준비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다.
날짜가 다가오고 난 김밥재료 준비해야하는데 내가 사는 말랑(malang)에는 한국 슈퍼가 없다. 외국식품코너가 있긴 한데 구색이 거의 갖추어지지 않아 있는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이참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한국 김밥 맛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단무지 사러 한국 슈퍼에 갔다. 차타고 2시간 반 정도 왕복이 다섯 시간 거리인 수라바야(surabaya)로.
차타고 갔는데 한국슈퍼 진열장에도 한국산 단무지는 없었다. 직원에게 물으니 없다고 했다. 그랬다. 지난 2009년 9월에 인도네시아 관세청과 한인무역업체 통관. 물류 해결을 본격화하기 위해 인니관세청과 공관간의 긴밀한 협조체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결과에 대하여 잘 모르겠고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다만 그런 일로 인하여 수입금지 대상품목중의 하나인 단무지가 없어 내가 김밥 만들려는데 골치가 아프다는 것만 말하고 싶다.
슈퍼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손수 만든 단무지가 있다고 말하는데 보니 커다란 반찬통에 단무지가 몇 개가 노랑 물에 잠수하고 있었다. 그렇지 인도네시아 무 생김새가 단무지 만들기에는 딱 좋지, 먼 거리를 차타고 단무지 사러 다니는 나에 비해 아주머니는 아이디어도 좋고 부지런하고 알뜰하기까지 하구나 칭찬을 슬쩍했다.
직접 담근 단무지 맛은 모르겠고 그렇다고 시식해 보자고 할 수도 없고 그 아주머니의 실력을 믿고 사 왔다. 그런데 이건 빛깔과 모양만 단무지였고 맛은 시큼했다. 그렇다고 안 넣으면 모양이 덜 예쁠 것 같아 가늘게 썰어 흉내만 내고 김밥을 만들었다.
아무튼 얇고 예쁘게 썰어 담고 참기름도 적당히 발랐다. 그리고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나눠주었다.
교수님들은 그 김밥과 예쁘게 담은 후식과일 집으로 가져가서 아내에게 건넸더니
“어머 이것 진짜 한국 음식인가 봐요. 이렇게 예쁘고 맛있는 건 처음 먹어요.”
하긴 우리나라 김밥을 보고 예쁘고 맛있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입맛의 감각을 잃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수님은 그 이야길 딸아이에게 전해면서
“ 상아야 한국 김밥 언제 또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 교수님 아직 논문발표가 남았습니다."
" 아 참 그렇구나!"
딸아이의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딸아이 졸업논문에 엄마는 김밥 준비. 그래 해야한다면 하지 뭐, 논문세미나인지 음식세미나인지 엄마니까 해 줄게. 음식가지고 마음 상하면 안되는 것이 우리 한국인들의 인정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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