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

여행은 일이고 일은 여행이다

인도네시아 일상/인니 한인뉴스 기고

2009년 10월호

이부김 2009. 10. 9. 18:54
728x90
반응형

     인도네시아 학부모 되고 세 번 놀랐다.


                                                          별과달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학부모 되고 세 번이나 놀랐다.

첫째, 성적표는 부모와 학생이 직접 선생님께 받는다. 

둘째, 졸업식장에서 박수를 쳐야 할지 말아야할지.

셋째, 외국인이면 입학할 때 주의 할 것과 얄궂은 입학식.


낯선 나라, 인도네시아로 삶의 터전을 옮겼을 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또 아이들을 ‘로컬학교’에 다니게 할 것인가, 아니면 ‘국제학교’에 다니게 할 것인가,’란 두 갈림길에 서서 갈등도 빚었다.

무슨 일이든 100% 좋은 것도 없지만 100% 나쁜 것도 없다. 그렇다면 좋은 것은 무엇일까, 로컬학교에 다니면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는 것과 모두가 외국인인 국제학교보다 귀한 외국인 대우받으면서 다닌다는 것이다. 물론 학생하기 나름이지만, 여러 가지에서 관심과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 아이들을 데리고 로컬학교지만 좋다는 사립학교로 갔다. 교무실로 가는데 복도에서 만난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있었고 그들과 내 아이들을 뒤섞여 놓는다는 것이 내 마음에서 그리 쉽게 허락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복을 입혀놓고 보니 저절로 그들과 같아져버렸다.

어떻게 보면 자식들에게 미안한 일일수도 있다. 그러나 미안함은 울퉁불퉁한 삶의 굴곡을 서로 나눠가지는 것이기에, 그 울퉁불퉁함을 차라리 아이들과 나눠 갖으면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이정표 세워가는 것도 값진 교육이라 나는 생각하고 결론지었다.


* 성적표는 부모와 학생이 직접 선생님께 받는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성적표를 두고 면담중

인도네시아 초. 중. 고등학교는 성적이 높고 낮음에 따라 진급과 유급이 있다. 그래서 성적표를 아주 소중하고 신중하게 여긴다.

 

“ 엄마. 이번 금요일 아침에 성적표 받으러 학교에 꼭 와야 한다.” 딸아이가 말했다.

“ 왜, 너 학교에서 일 저질러서 성적이 엉망이니? 그래서 엄마가 성적표 받으러 학교에 가야하니?”

“ 아니 모든 학부모들 다 직접 받으러 와야 한데......”

맨 처음 아이에게 이 소리를 듣고 나는 ‘거 참 이상한 학교네.’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부모가 직접 성적표 받으러 학교에 가는 일, 한국에서 학부모였고 운영위원회까지 해봤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요즘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한국이었고 여긴 인도네시아다. 어디든 비슷하겠지만 해마다 방학시기가 같아 성적표 받는 날짜는 항상 같은 날로 겹쳤고 나는 세 장의 성적표를 받으러 초, 중, 고등학교로 바쁘게 다녔다. 내가 의아해한 것은 대낮에 성적표 받으러 온 학부모들 중에서 아버지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제복 입은 공무원, 군인, 경찰들도 눈에 띄었다.


성적표를 나눠주는 방법은 학생의 출석번호대로도 아니고 성적순 아니고 도착하는 차례대로 성적표를 받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은 성적표와 출석부를 동시에 펴놓고 출석부 학생이름 옆에 부모에게 사인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학생의 성적표를 펴놓고 담임과 학생과 학부모 셋이서 머리를 맞대었다. 면담이 시작되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설 무렵 나는 선생님께 질문했다.

“ 왜 성적표를 학부모가 직접 와서 받습니까?”

“ 성적표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에서는 이렇게 안합니까?”

“ 한국에서도 성적표는 중요하죠. 하지만 부모님께 전달하라고 학생들을 믿고 맡기는 것이지요.”

“ 네, 저흰 학생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성적이 좋고 나쁨은 학생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학교와 학생과 학부모의 공동 결실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합니다.”

그랬다. 내 생각에도 그건 확실한 정답이었다. 학교에서는 면학분위기를 조성해 주면 선생님들은 가르침과 학생의 노력 그리고 부모님의 뒷바라지가 조화를 이루는 귀중한 만남의 시간이니까. 1학기 때는 많은 부모님들이나 학생들의 모습이 그런대로 평온하다. 그러나 매년 2학기 성적표 받는 날 복도구석에서 울고 있는 학생은 유급된 것이고 웃는 재잘거리는 학생은 진급이 된 것이다. 성적표는 한 장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한 권의 노트로 돼 있어 학교 졸업할 때까지 사용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성적표는 곧 '‘나라의 문서’'라고 한다. 우리가 이사를 하다가 딸아이의 고등학교 성적표를 잃어버린 적 있었는데 학교에서 분실신고를 경찰서에 가서 하라고 해서 내가 신분증 분실신고처럼 했고 그 서류를 받아 학교로 제출하여 학교로부터 다시 성적표를 받은 적도 있다.


 

* 졸업식장에서 박수를 쳐야할지 말아야할지

                                                                                

졸업식, 하면 추운 날씨와 수북하게 쌓인 꽃다발 풍경이 떠오른다.

한국 학교들은 추운 겨울인데도 졸업식날에는 생화들이 즐비하지만, 인도네시아 학교들은 일 년 내내 꽃이 만발해도 졸업식장에는 꽃다발이 하나도 없다. 내가 ‘꽃다발을 가져갈까?’ 하고 물으면 아이는 ‘어색하다’며 그냥 놔두라고 했다.

내가 참석한 졸업식장은 무슨 경매장 같기도 하고 아주 긴장된 순간이었다. 이미 말한 바대로 인도네시아학교는 진급 유급이 있다. 그런데 그 유급이 졸업반인 학생들에게는 가슴에 피멍을 들이는 것 같았다.


졸업식장에서 순서에 따라 의식이 진행되고, 담임이 봉투를 개봉하면 그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긴장하여 조용해진다. 담임은 단상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00번 통과 00번 통과......’  이렇게 발표한다. 다시 말하면 졸업을 하느냐 못하느냐를 알려주는 것이다. 3학년 전교생 수백여 명이지만 단상에서 일일이 성적을 공개하는데 한반의 성적 공개가 끝나고 100% 졸업이면 박수가 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그러나 담임의 발표에 한 학생의 낙오자라도 나오면 박수치려고 준비하던 손을 얌전히 내려야 한다. 또 학교마다 약간의 배려가 있는데 성적표 봉투를 교육청으로부터 졸업식 전에 받은 학교는 봉투를 개봉하여 유급자에게 졸업식장에 참석하지 말 것을 미리 통보해 준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해가 간다.

졸업식장에서 박수도 쳐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는데 이런 상황에 꽃다발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초. 중학교, 고등학교는 매년 한학교당 졸업 못하는 학생이 매년 2-10명 정도 있다. 모두 다 졸업하는 학교도 있고 몇 년 전 엽기적인 일이었는데 족자카르타시 모 고등학교 졸업반 전학생이 유급되어 된 사실도 있었다. 

졸업식장에 참석해 본 나는 희망을 키우는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이런 고통스러운(?) 문교부의 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고 그런 제도에 인도네시아교사 학생 학부모 이미 훈련이 돼 있었고 몇 년을 겪어 본 나도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인도네시아학교 졸업식에는 전교사들이 한 줄로 서서 일일히 졸업생들과 학부모들과 악수하고 더러는 껴안아 주는 모습이 좋았다.

 

 

 * 대학입학에 관하여

 

인도네시아학교는 중. 고등. 대학교 모두 기부금제도며 입학금은 성적에 따라 차이가 난다. 대학교 입학과정을 설명하자면 수능시험(SPMB,UMB)을 치게 된다. 지원한 대학에 수능성적으로 합격하면 입학금이 기본금이고 2차 시험에 합격하면 3배의 금액을 더 지불하게 된다. 물론 학교마다 등록금의 차이는 있다.

중, 고등교육을 하지 않아 수능시험 볼 실력이 안 되지만 ‘외국인 특례’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그러나 수능시험으로 합격한 학생들보다 5배의 입학금을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카르타에 있는 인도네시아대학(Universitas Indonesia)에 한국학생이 수능(UMB.SPMB)으로 합격했는데 입학금이 1천만 루피아였다. 학기마다 5백만 루피아씩 지불하여 일 년에 천만 루피아를 지불한다. 그러나 외국인 특례로 입학한 또 다른 한국인 학생은 입학금이 5천만(약 5.000$) 루피아였고 학기마다 2천5백만(2500$)루피아씩 일 년에 5천만 루피아를 지불한다. 


우리 딸아이가 수능으로 합격하여 등록하러 갔더니 대학교에서 “너 외국인이니까 등록금이 더 비싸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딸아이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중, 고등학교 졸업했고 제 실력으로 제 1차 수능성적으로 합격했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등록금이 비싸야한다면 총장님이나 학장님께서 해명해 주세요.”고 했더니 대학교 측에서 잠잠해졌고 딸아이는 원래시스템대로 아주 싼 학비로 대학교에 다녔다. 만약 그때 꼼꼼히 따지지 않고 국적이 외국이니 “네“했다면 아주 비싼 등록금으로 입학했을 것이다.

 

                                                                              여러 갈래로 머리 묶은 남고생들

인도네시아학교들은 입학식은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그런 희한하며 감동적이고 스릴 있는 일도 많다. 중, 고등학교는 입학식 다음날부터 모스(Masa Orientasi Sekolah)라 하여 요상한 행사다.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지만 상급생들 중에서 간부급들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인데 교가가 아닌 ’모스가‘라는 주제곡까지 부르면서 한다. 인도네시아학교 학생이면 누구나 겪어야 할 일종의 ’홍역‘같은 것이다.

 

입학 후 새로운 학교와 교복을 입고 희망에 부풀어 마음이 붕 떠있는 학생들에게 얄궂은 숙제와 준비물을 가져오라고 한다. 게다가 가장행렬 못지않은 모양새로 길게는 일주일씩이나 한다. 남자고등학생에게 여러 갈래로 머리를 묶어오라고 하질 않나, 짝짝이 양말에 박스나 포대기를 가방대용으로 메고 그것도 모자라 장식품으로는 병뚜껑을 진주목걸이처럼 주렁주렁 달아서 새벽에 등교하라고 한다. 

그 기간 동안에는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도시락을 가져 오라고 한다. 도시락의 내용물은 숙제의 일부분으로 똑같아야한다. 이를테면 볶음밥 다섯 가지 색깔과 반찬으로 흰자에 노른자 두 개 터지지 않은 것 후식으로 바나나 10cm, 사탕 RP100짜리 하나 사고 영수증 받아오기....... 등등이다. 모스 때 그런 준비물로 가득 채워진 가방을 메고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마치 해리포터와 친구들이 호그와트학교로 등교하는 모습 같았다.

 

그렇다면 대학교에도 이런 것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대학교에서는 모스를 ‘오스팩’(Orientasi Stui dan Pengenalan Kampus)라고 한다. 현장에 가보았다. 대학교는 학장님의 허락이 있어야 볼 수가 있다. 신입생들에게 해괴망측한 걸 왜 하는지 또 모스의 유래에 대하여 알고자 브라위자야대학교 헤르만 법대학장님을 찾아갔다.

“ 학장님도 모스를 겪었습니까?”

“ 네 저희들은 요즘 학생들보다 더 심하게 겪었습니다.” 

모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네덜란드와 일본정부에 의해 지배받을 당시 평민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신분의 차별을 이용하여 교내기강확립 한다며 심한훈련을 시키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후 군인학교에서 대학교로 퍼지면서 의무화되었고 다르게 바라보면 학생들이 학교 규칙과 공부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려는 의도이며 지금의 고등학교 중학교까지 모스로 전해진 것이다. 

입학시기가 되면 거리의 미치광이 부대들이 행진하는 것 같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사실 당사자들은 고역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랬고 내가 그랬으니까. 그러나 고역인 만큼 값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모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만은 아빠엄마와 자녀들 사이가 인생의 선후배가 되어 친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세월의 벽을 허물어주는 대화라고 말했다.


728x90
반응형

'인도네시아 일상 > 인니 한인뉴스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년 12월호  (0) 2009.12.11
2009년 11월호   (0) 2009.11.18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2009년 9월호  (0) 2009.09.21
2009년 8월호  (0) 2009.08.04
2009년 7월호  (0) 2009.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