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

여행은 일이고 일은 여행이다

인도네시아 일상/인니 한인뉴스 기고

2009년 11월호

이부김 2009. 11. 18. 02:32
728x90
반응형
                  ‘필리핀 한인 피살 2명’ 뉴스를 읽고         
                                                                  별과달  

      어떤 이유에서든 피살당한 일은 슬픈 일이다. 더군다나 외국에서라면 나는 필리핀 한인 피살 2명’ 뉴스를 읽고 재외국민으로서 상당히 가슴 아픔을 느낀다.

       

      자동차를 차고에만 보관하면 사고 나지 않는다. 아무리 성능 좋은 자동차라도 차고에만 있다면 그건 고장 난 자동차나 다름없다. 그러나 굴러가야하는 것이 자동차 원래의 목적이므로 도로를 빨리 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교통사고도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야망이란 목표를 겨냥해서 보다 더 나은 설자리와 밥을 위하여 이런 일 저런 일 하다보면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엮이고 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본의 아니게 마음에는 피부에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질 것같은 일이라도  서로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반드시 정답이 있다. 다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빚어질 때 감정에 금이 가거나 미움이 싹트고 원한이 자라기 마련이다.

       

      내가 처음 인도네시아 왔을 때 나보다 5년 먼저 온 한국분이 집 가까이 있었다.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그때 인도네시아사람들처럼 사악한 무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요금도 속이고 거스름돈도 없다기에 따지듯이 해서 받았다고 말했더니 그 아주머니는 펄쩍 뛰면서 먼저 살아본 선배로서 조언과 살아가야 할 방법을 알려줬다. ‘큰돈을 택시비로 줬는데 기사가 거스름돈이 없다고 말하면 거스름돈 그거 한국 돈으로 몇 푼 안 되니까 달라고 따지지 말고 그냥 내려라. 우리는 외국인이니까 알아도 따지지 말고 여기 사람들 감정 상하게 해서 좋을 것 없으니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살아라.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기에 괜찮았지만 누구는 사업하다가 돈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칼부림 당했고 또.......‘

      선배로서의 조언이라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살아가라는 건지 아니면 집안에서 숨쉬기만 하라는 건지 도대체 감 잡을 수가 없었다.


      두 해 전인가, 이곳 가까운 곳에 살던 한국남자도 현지인에 의해 피살당한 적 있다. 나는 이번처럼 필리핀 한인 피살 2명 뉴스를 읽고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내가 참으로 용감했던 예전 일을 떠올린다.

      PC방할 때 일이다. 직원들이라고 해야 고작 열 한명 데리고 했지만 사고방식이 다른 현지인들과 함께 하자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상술에 능한 중국인들은 카운터를 모두 가족이 직접 맡고 있지만, 친척하나 없는 나 모두 현지인을 채용하다보니 믿을만한 사람 찾기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발견하는 것처럼 내게는 어려웠다. 삶의 윤활유인 ‘돈’과 연결된 것이고 가진 것이 적은 그들에게 현금 통을 맡긴다는 것은 나에게 상당히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투자해서 인테리어까지 컴퓨터와 인터넷이 연결되어 운영한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고등학생 딸아이를 일요일 낮에 경험삼아 카운터를 맡겼다. 그런데 이상하게 딸아이가 맡은 날은 직원이 맡은 시간대보다 늘 상당한 액수가 차이 났다. 그런 일이 여러 번이 반복되자 나는 직원 개개인과 상담에 들어갔고 결국은 몇몇 직원들의 소행임을 알았다. 카운터에 프로그램(빌링)이 설치가 되어 있었지만 음료와 간식으로 판매되는 것이 상당히 많이 빠져나갔던 것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정말 믿음 가는 직원 한 사람만 남겨두고 며칠에 걸쳐서 열 명의 직원 모두 해고시켰다. 조심스럽게 그 아주머니의 조언을 기억하며 행여 보복이나 원한을 살까 하는 두려움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우연인지 어쩐지 몇 차례 바이러스 공격도 받아 문을 닫아야 했었고 손님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릴 때도 많았다. 그런데 매주 토요일마다 한 달에 네 번이나 계속해서 여러 대 CPU속의 하드디스크, 메모리 등등 잃어버렸다. 그것 때문에 너무 신경을 써서 나는 티푸스까지 걸려 입원했었다. 그때 내 핸드폰으로는 수시로 이상한 문자들이 들어왔고 미스 콜이나 받으면 말없는 전화가 무수히 걸려왔었다.


      사용자가 많으면 인터넷이 느렸다. 시스템 확인결과 처음 계약한 인터넷 용량보다 통신사로부터 낮게 공급받았다. 나는 담당자에게 정상용량을 청구하고 찾아가 봐도 한 달 동안 대답만하고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정오 손님들이 꽉 찼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결국 통신사의 문제로 인터넷이 올 스톱되었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자 통신사로 연락해서 내 신분을 밝히고 자초지종 내 뜻을 전달했다. “ 통신사에 매달 이정도 금액을 지불하며,...... 시스템 원상복귀.......“ 그랬더니 한 달이나 졸라도 받아보지 못했던 걸 자카르타에서 직접 보냈다며 통신사 직원들이 들고 와서 사과를 하고 밖에는 인부들이 인터넷 선을 새것으로 갈아준다고 난리들이었다. 한 시간 반에 인터넷 속도가 최상으로 설치되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생업에 관련된 일이라 직원들도 전부 물갈이 했고, 통신사 비서실로 전화해서 고함지르던 일 그것은 한국에서 고객으로 받던 서비스가 베여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알기 때문에. 

      좀 우스운 이야기겠지만, 나는 먼 오지로 갈 때 만약을 위해서라며 내 아이들에게 경찰 영사 핸드폰번호를 알려주고 떠난다. 아무리 살기 좋고 편한 것 같아도 외국은 외국이다.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 다독거려주고 병풍처럼 감싸주는 편안한 곳이 바로 친정 같은 곳이 대사관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나의 조국, 한국만큼 좋은 나라가 없고, 우리 한국 사람들만큼 인정이 깊고 눈빛 따뜻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728x90
    반응형

    '인도네시아 일상 > 인니 한인뉴스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2010년 1월  (0) 2010.01.16
    2009년 12월호  (0) 2009.12.11
    2009년 10월호  (0) 2009.10.09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2009년 9월호  (0) 2009.09.21
    2009년 8월호  (0) 2009.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