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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일상/인니인.한인

옆집 아줌마가 이혼하고 싶데요.

이부김 2009. 5. 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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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집 아줌마가 이혼하고 싶데요.

 

                                                        별과달

우기 철이 끝나 갈 무렵이라 비가 오다말다 하는 날이었습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아줌마가 있습니다. 함께 이웃 된지는 2년이 지났지만 가끔 고양이와 산책 나갈 때 바쁘면 눈인사 정도 나누는 사인데 웬일인지 아줌마가 집으로 놀러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여자들에게서 수다를 빼면 그건 식물인간이나 다름없겠지요. 예뻐지고 싶은 욕구나 수다 떨고 싶은 본능은 여자만이 가지는 권리(?)라고 하면 표현이 좀 이상해질까요? 아무튼 그 아줌마가 부스스한 머리로 슬리퍼 신고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가기 뭣하고해서 그냥 정원에 앉아 이런저런 생활이야기를 한참했습니다. 아줌마는 올 때보다 스트레스는 좀 풀린 듯한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어느 날인가, 옆집 아줌마가 알록달록하게 차려입고 외출하다가 나를 보자 우리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홍차를 한잔 권했습니다. 설탕 두 스푼을 넣고 저어 마시더니 뜬금없이 "이혼하고 싶어요." 하는 것이다. 이유는 한 달 전부터 남편에게서 여자 향수가 난다며 그 향수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고 백화점에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결혼 후 권태기가 느껴질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푸념을 털어 놨습니다. 주위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여자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고 했는데, 나도 남자나 사귈까하며 말했습니다. 결혼한 사람이 애인 사귀는 것은 처녀총각 짝짓기보다 더 어려울 수 있을 터인데 아주 쉽게 말했습니다.

아줌마는 남편에 대하여 많은 조사를 했는지 퇴근시간도 정확하고 혼자 외출도 없는데 퇴근 후 남편에게서 묻어나는 여자의 향수가 의심된다며, 아무리 물어봐도 여자가 없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어떤 얼빠진 남편이 아내에서 다른 여자 있다고 말할까요? 설령 있어도 없다고 해야겠지요.


그들 부부는 그렇게 사이가 벌어지고 날마다 다투었습니다. 결국 아줌마는 이혼을 시간마다 꿈꾸며 결심까지 하였다고 했습니다. 수십 년 부부로 살면서 마음으로 이혼생각 안 해본 사람이 과연 몇 있을까요. 날마다 마음의 보따리 싸들고 문턱을 드나드는  아내들은 또 얼마나 많은데.

그 아줌마는 눈물을 글썽이더니 이럴 때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며 물었습니다. 나에게 그냥 물어왔으면 나도 앞에서 말한 그 사람들과 같은 대답이 나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 한국 사람들은' 이라는 말에 책임감을 느껴졌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나를 그냥 아줌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나는 짧은 고민을 했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 말이란 자칫 잘못 전달될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나 개인의 생각과 판단이 어쩌면 '한국 사람은 다 그렇게 한다.'더라는 식으로 퍼질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위험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사고방식 생활 환경 결혼문화도 다른데.

얼른 떠넘기듯 나는 포장된 답변으로 말했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이럴 때 주로 종교지도자와 함께 상의를 한답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종교를 아주 신성시하기에 그렇게 말하면서 아무래도 아줌마는 교회 다니니까 교회목사님과 상담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마음과 생각으로는 거의 이혼의 수위를 넘어선 아줌마가 목사님께 상담하러 갔습니다. 교인이 수천 명에 이르기 때문에 아주 특별하거나 친하지 않으면 목사님이 성도들을 다 기억하기란 어렵지요.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내일 다시 오라고 했고, 갔더니 남편도 와 있더라는 겁니다. 날마다 아내의 바가지에 몸서리쳤던지 그 남편은 이미 목사님께 상담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들 부부를 불러 놓고 목사님은 남편에게 아내를 일하는 사무실로 한번 데려가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를 했답니다. 다음 날 아내는 남편 사무실로 갔더니 남편이 향수 테스트 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남편이 이제까지 뿌렸던 향수를 꺼내 놓고 설명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부부의 이혼은 없던 걸로 됐다고 했습니다.

 

오늘 그 아줌마는 고양이와 산책나가다가 말을 건넸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참 현명하다고. 그것은 고마운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 개인 별과달은  이래도저래도 괜찮은데 한국 사람이란 꼬리표가 붙으면 왜 이렇게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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