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다와 자와 사람들의 설날 맞이
글.김성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SMS가 들어 왔다. 푸른 모래 마을에서 순다 사람들의 새해맞이 축제( 라야궁안)가 있으니 오라는 내용이다. 푸른 모래 마을의 라야궁안/Rayagungan 축제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자 카르타에서 반둥(Bandung)을 지나 수머당(Sumedang)으로 가는 길이다. 깨끗하고 한적한 도로변, 오전인데도 가로수들이 심심한지 졸고 있다. 맞은편에서 큰 트럭 한대 힁하고 지나가면 화들짝 놀란 이파리들이 단잠을 깨웠다며 난리들이다. 알려 준 주소는 찌망릿(Cimanglid)면 푸른 모래(Pasir Biru) 마을이었다. 그렇다면 해변 마을일까.
산허리 문질러 만든 도로라서 그런지 길이 꼬불꼬불하였다. 와~ 정말 골짝이다. 집들이 몇 채가 있고 푸른 모래는커녕 앞뒤가 전부 논밭이고 대나무 숲의 산속마을이었다. 내 고향은 의성군 사곡면 매곡이다. 谷자가 두 번이나 들어갔고 요즘도 5일 장날 아침에만 버스가 한 번 들어오는 낙후부락이다. 그런 내 고향보다 푸른 모래 마을은 더 골짝이었다.
마 을 입구에서 보이는 건 낚싯대처럼 긴 대나무에 뽀얗게 삶아 빨아 널어놓은 수십 개의 핫바지들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핫바지는 세로로 달린 현수막들이고 특별한 날은 만국기 달듯이 촘촘히 달아 두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풍경일 것이다. 행사장 가는 길 양쪽에는 가슴높이 대나무 막대들은 저마다 기름담긴 간장종지 하나씩 머리에 이고 나란히 서 있었다. 종지에 담긴 기름은 밤에 불 밝히려고 준비 해 둔 것이란다. 반갑게 맞이해 준 그들은 ‘우리는 모두 이슬람 인들이지만 최대의 명절인 러바란(Labaran)보다 라야궁안(Rayagungan) 더 뜻있게 보내요.’ 라고 미리 알려 주었다.
축제 첫날 아침에는 밥 행진이 있었다. 각자 해 온 나시뚬뻥(Nasi Tumpeng:노란색 밥을 고깔 모양으로 만들어 꾸민 음식)을
들고 마을 한 바퀴 돈다. 그리고 조상이나 영웅들 무덤에 가서 제를 지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Petai(pete)불에 구워서 먹는데 나도 먹어 봤다가 혼났다. 급하게 화장실을 갔다. 마구간의 소가 큰 눈망울을 끔뻑끔뻑 거리며 자꾸만 쳐다보는데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민망했다. 그래도 명색이 화장실인데 문은 없고 듬성듬성 박힌 키 작은 울타리뿐이었다. 게다가 화장실과 마구간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소가 ‘음매~’하며 혓바닥을 내밀자 내 엉덩이를 핥아버릴 것만 같았다.
밤 에는 횃불 행진이 있었다. 어둠에게 한 번도 져 본적이 없다는 불빛, 행진이라고 횃불 들고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가 아니라 마을에서 1km 떨어진 산꼭대기 사냥터까지 이어졌다. 백여 개의 횃불들이 소리와 움직이는 걸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한편의 전쟁 영화 보는 것 같다. 횃불들이 정상에 도착했다. 인간들의 욕망. 미움. 질투. 분노. 원한. 슬픔...... 하여간 나쁜 단어들을 다 갖다 붙여서 불화살을 만들었다.
모두들 불화살로 멧돼지를 쏘는 것이 풍습이라며 나에게도 자꾸 권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 망설이다가 ‘그래. 외국인이 한국 사람들 윷놀이에 윷 한번 던진다고 생각하지 뭐’ 하며 불화살 하나를 쐈다. 많은 사람들이 쏘아 버린 불화살에 맞은 제단위의 멧돼지는 활활 타올랐다. 사람들의 환호를 지르며 소원을 빌었을 것이고 나는 퇴색해 버린 삶의 낙엽들을 태웠다. 불에 타지 않은 돌덩이는 산 위에서 아래로 굴러버렸다. 검은 연기는 밤하늘의 별들을 까맣게 그을려버릴 작정인지 높이 하늘로 올라만 갔다.
다음 날 낮에는 진흙 논에서 씨름했다. ‘인간은 더러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벗으면 다 같다.’는 걸 의미한다던 이 진흙씨름.
푹 푹 빠지는 진흙 속에서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주는 기쁨과 받는 즐거움’ 이라며 한 사람이 돈을 뿌렸다. 역시 사람들은 돈을 좋아했다. 조심스럽게 다니던 사람들이 돈을 잡으려고 우르르 뛰어다니다가 보니 몰골들이 말이 아니었다. 삶의 축소판 같기도 했다.
그 들은 그렇게 뒹굴면서 한해에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어버린다고 했다. 온통 진흙투성이라도 웃을 수 있는 그들의 여유가 값져 보였다. 함께 하자며 잡으러 왔다. 나는 돈을 뿌리며 용케 빠져나가다가 옆 사람과 부딪히는 바람에 이젠 나도 진흙투성 이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 모든 걸 다 잊어버리 고 잠시만이라도 뒹굴고 싶었다. 내가 몇 살인지 또 우리 집 전화요금이 얼마인지 오늘 오후 비행기 탑승이 언제인지를.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진흙 씨름은 정말 좋은 행사 같다.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내가 언제 맑은 정신으로 저렇게
그 러나 하룻밤을 더 자려고 생각하니 그 마을의 욕실문화와 잠자리가 떠올랐다. 그들이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특별히 마련해 준 방은 돗자리 깔린 마룻바닥이었다. 산골바람이 문틈으로 대나무 벽사이로 스며들어 내 품에 안겼다. 미국 전설 속에 나오는 환란새처럼 나는 밤새껏 추위에 떨면서 아침을 맞았던 것이다.
나는 진흙 묻은 옷을 벗어 둘둘 말아 가방에 넣고 이름도 예쁜 푸른 모래 마을을 떠나왔다. 그들과 함께한 설날은 해를 거듭할수록 진흙 속에 꽃처럼 아름다운 기억으로 피워 오를 것만 같다.
자, 그럼 동부 자와 사람들은 설날은 어떻게 맞이 할까?
인도네시아에서 면소재지가 제일 많다는 말랑군. 그곳에는 매년마다 화려한 설날 행사로 유명한 까위산에 가 보았다.
그들은 사뚜수로/Satu suro 라 하여 거대한 상깔라 형상을 만든다. 상깔라에는 잡귀와 액운을 가득담아 얼굴 모습까지 무시무시하도록 만들어 불에 태운다. 불에 태우므로 모든 액운을 떨쳐버리고 밝고 환한 새날을 맞이 할 수 있다고 했다.
까위산/Gunung Kawi은 정상에는 고목만한 크기의 굵고 작은 촛불들을 여러개 켜 둔다. 사업가들이 많이 와서 소원을 빌어 번창하였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업가들 중에서도 특히 인도네시아 중국계들이 많다.
촛불이 밝혀진 곳을 나오면 찌암시/Ciamsi 라는 곳이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싶은 자신의 운명(?)을 알아 보는 곳이다. 죽통속에 여러개의 점괘들이 꽂혀있고 운명을 점치고 싶은 사람은 죽통을 사정없이 흔들어 댄다. 얼마나 잘 흔들어야 운명, 좋은 운명이 뽑혀질까, 조심스럽게 희망찬 마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그렇게 한참을 흔들어서 하나의 점괘가 뽑혀지고 있었다.
좋은 대학의 입학을 위한 수험생, 손자와 함께 온 할머니 작년 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야망찬 사업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사뚜수로가 있는 날 오전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전통의상과 화장으로 곱게 단장한 여인들 얼굴에도,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 하고 신발을 신지 않은 어린 아이 맨발등 위에도, 가멀란을 메고 있는 아저씨 머리에도 소나기는 그렇게 내렸다. 그러나 마이크를 잡은 진행자는 '우리 힘을 냅시다/ Ayo kita harue semangat' 하며 사람들에게 비속에서도 행사를 강행했다. 그들의 열정에 우기철의 소나기도 내리다가 지쳤는지 멈췄고 비에 젖어 살갖에 달라 붙은 옷들이 다 말라갈 즈음, 천사와 악마들의 놀음에서 천사가 익고 악마가 물러가면서 제단에서 대기하고 있던 상깔라는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시대가 변하면 공식도 변하는 것이다. 설날 행사를 말랑군에서는 관광상품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일천육백여명의 주민들은 의무적으로 참여하여햐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벌금을 물게 된다. 사탕수수와 고구마 그외 농작물로 생업을 이어가는 까위산 주민들의 수입을 보장하기 위한 군수의 배려인지는 모르겠으나, 전통문화가 인스턴스화 되어가는 시대를 실감하는 때인 것 같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받은 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2009.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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