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레라로 출발 하던 날 / 1
공항은 언제나 만남과 이별의 만들어 내는 곳이다. 수라바야 공항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예전처럼 공항 바닥에 퍼질러 자는 사람은 없지만 벤치위에 통째로 누워 자는 사람은 간혹 있다.
오늘은 한국에서 방송제작 팀이 오는 날이다. 만난 적 없지만 굳이 이름을 써 들고 있지 않아도 나는 그들을 느낌으로 한 눈에 척
알아보고 만났다.
우선 저녁 식사하러 ㅂ식당에 갔다. 그 주인아주머니는 우리가 오지로 촬영 간다니까 고맙게도 김치와 고추장을 조금 싸주려고
했다. 나는 식당 주인들에게 그런 호의를 받아 본 적이 없어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래서 PD에게 “음식이 잘 맞지 않을 것
같은데...”하고 물으면 아무거나 다 잘 먹는다고 말해 내 눈길은 고추장에게 가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려고 공항 내 허름한 호텔로 갔다. 가깝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방문을 여는데 찌짝(도마뱀 작은 놈)이
먼저 나를 반긴다. ‘반갑다 찌짝아!’
신선한 공기가 어깨너머로 스치고 우리는 비행 출발 시간보다 조금 여유롭게 나섰다. 출입구에서 아저씨 한 사람이 티켓을 내밀자, 공항 직원이 『 2시간 지연 』이라고 알려 주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은 아니지만 그 아저씨의 비행기가 지연된다는 것은 남의 일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목적이 아니길 내심 바랬다. 아저씨보다 나는 잽싸게 항공사 직원에게 티켓을 내밀자 ‘2시간 지연’이라고 한다. 아이구... 남의 일이 아니었다.
『 2시간이나 늦으면 발리에서 갈아타고 플로레스 섬 마우메레까지 오늘 못 가겠군요?』
『걱정 마세요. 오늘 플로레스섬 마우메레까지 갈 수 있습니다..』
덤으로 생긴 2시간 동안 나는 우리가 가야 할 코스를 알려줬다.
수라바야 공항-> 덴파사르 공항 -> 숨바 섬(경유) -> 플로레스 섬 마우메레 공항->자동차 (3시간) 라랑뚜까 -> 여객선(2 시간)-> 람바따(레올레바) -> 자동차( 4시간)-> 라마레라 마을에 도착.
발리에 도착, 그런데 우리가 타려던 비행기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플로레스 섬 마우메레 가야 하니까, 다른 노선을 알아봐 달라고 항공사 직원에게 졸랐더니 하루에 한 번 밖에 없는데 조금 전에 떠났다고 했다.
섬으로 가는 길만 아니라면 밤새껏 차를 타고 가겠지만 섬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공사에서 준비해 준 호텔, 이름만 호텔이지 최상급 여인숙 같은 곳에서 하루를 더 묵어야만 했다.
아직 점심시간전이다. 내일 아침까지 도대체 뭘 하란 말인가, 방안에서 끙끙대며 있기 보다는 발리 섬 구석구석을 잘 뒤져보며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PD와 함께 구성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발리가 인도네시아에 속하지만 실제로는 인도네시아가 발리에 속한다고 해도 그리 과언은 아니다. 그렇게 유명한 관광 도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발리 섬, 그러나 그 옥 같은 섬에도 티가 있다. 그건 외국인과 내국인의 음식 가격표가 다르다는 것을 난
오래 전부터 안다. 우리가 발리에 머물렀을 때도 그랬다.
서양인과 나에게 주는 메뉴 가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짐바란에서의 일이다. 종업원이 나에게 내놓은 가격표는 레스토랑 이름이 적인 정식 메뉴 표였으며 옆 인도네시아인과 같은 거였다. 그러나 서양인이 들고 있는 가격표는 흰 종이에 적혀있어 궁금한 나는
『저 가격표는 무엇이냐? 』
『 네, 그건 관광 온 외국인 가격푭니다.』
발리 섬의 일몰, 따나 롯에서의 보는 일몰은 사람의 마음을 자꾸 흔들어 놓으며 그리움을 커다랗게 키우게 만들었다. 여유로움 없이 짜여진 스케줄임에도 불구하고 섬으로 떠나지 못한 우리는 황금색 일몰 속에서 촬영 첫날을 그렇게 보냈다.
라마레라에 도착 하던 날
다음 날 해는 약속이나 한 듯 떠올랐다. 발리에서 출발하여 플로레스 섬 마우메레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의 택시는 전부 승합차를 택시로 이용되고 있었다. 택시 운전기사라고 마중 온 사람이 kijang를 타자고 하기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정글 같이 풍경 좋은 곳을 3시간 정도 가면 라랑뚜까에 닿았다.
라랑뚜까는 Prosesi 가 유명하다. 카톨릭의 전통적인 행사로 아주 볼만하다. 십자가를 메고 뒤에는 촛불을 들고 마을을 돌며 하는 하는데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인도네시아 전국에서 아니 외국에서도 그 행사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라랑뚜까에 도착해 보니 레올레바로 가는 배는 하루에 한 번, 그것도 아침에 일찍 출발하는데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으니 배는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어떻게 도착하는 곳마다 이렇게 발목을 붙잡는지 모르겠다.
<라마레라 사람들은 주로 목선을 타고 이동한다>
촬영지로 떠나는 우리에게는 사실 시간이 황금이다. 그런데 누에가 뽕잎 먹듯 시간을 갉아먹고 있으니 도저히 바쁘고 불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발리에서 플로레스로 오는 것은 비행기로 움직여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기다렸지만, 작은 섬으로 가는 것은 비용이 좀 들더라도 적당한 배를 빌려서라도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때 이심전심으로 PD와 내 생각은 만장일치를 이루었다.
어선을 전용으로 빌리려고 하니 요금이 엄청 비싸다. 아무리 흥정을 해도 배가 참치 잡이 배인데 움직이면 드는 기름 값이니 뭐니 해서 갖다 붙이자 좀처럼 값이 내려가지 않는다. 오랜 흥정 끝에 우리는 심야에 배를 타기로 했다.
배가 준비되는 동안 우리는 아는 사람 집에서 저녁을 대접 받았다. 그 집은 중학생 나의 아들이 다니는 카톨릭 재단의 교장 신부님의 고향집이다. 그는 말랑 수도원에서 생활하는데 내가 그 곳에 간다고 하자 자신은 고향에 가 본지가 꽤 오래되었다며 부모님께 대신 안부라도 전해드리라며 꼭 만나고 오라며 물건까지 맡기기도 했다. 하긴 그의 조카와 형수는 말랑에서 만난 적도 있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어쩌면 더 반가울지도 모른다.
하늘에서는 별빛들이 총총하다. 그 아래 저 멀리서 불빛들이 꿈틀거렸고 그곳이 우리가 도착할 레올레바라고 했다. 가도 가도 십리라는 말처럼 가도 가도 불빛은 저 멀리에 있었다. 깜깜한 밤바다, 바람마저 불지 않아 너무 지루했다.
졸음이 쏟아져도 잠을 잘 수도 없는 어설픈 선실, 참치 잡이 배라고 하나 생선 냄새가 실실 고여있고 새까만 어부들 7명은 외국인인 나와 PD 둘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나는 솔직히 말해 돈이 든 가방을 자꾸 끌어 안고 있기도 뭣하고 스스로 자꾸만 겁이 났다. 선실을 나와 판위로 올라갔다. 그 위도 마찬가지였다.
이 지루한 시간을 수월하게 보낼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나는 남자들이 가장 신나게 이야기한다는 군대 생활 이야기 해 보라고 PD에게 말했다. 그 외에는 도대체 시간을 떼울 재간이 없었다. 이따금씩 물살이 철썩이긴 했지만 밤바다는 거의 침묵 상태였다. PD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듯이 열심히 이야기 했다. 군입대부터 휴가며 군복무 마치는 과정이 끝나자 별빛만 하던 불빛이 달빛만큼 커져 환해지더니 드디어 우리는 레올레바 항구에 도착했다. 그때 나의 손목시계는 밤 23:40분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약속한 사람을 만나 라마레라로 가야한다. 자정이다. 대기시켜 놓은 차를 탔다. 작은 트럭처럼 생긴 차인데 뒤 칸은 하늘이 보이며 의자를 마주보게 개조한 차였다. 오래 사용하여서 그런지 등받이의 껍질은 낡아 너절너절했고 스펀지는 어린아이 덧니처럼 툭, 튀어 나왔다. 긴 의자에 다리를 뻗고 앉아 보니 조금 편하다.
희미한 자동차 불빛에 보이는 꼬불꼬불한 신작로, 큼직큼직한 자갈들이 널려있고 움푹 패인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내가 경운기를 탔는지 달구지를 탔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엉덩이가 들썩거려졌다.
어깨는 옆 사람과 여러 번 부딪혔다. 눈꺼풀도 무거워 자꾸만 내려왔다. 세 시간 정도 그런 길을 달린 것 같다. 덜컹거림이 멈추더니 라마레라 마을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때가 새벽 02시가 넘어 3시에 가까웠다.
라마레라 오늘 길이 초행이라서 그럴까, 어떻게 이렇게도 멀고 험하단 말인가, 어제 오늘은 비행기타고 배타고 차타고 골고루 탔다. 만나서 반가운 사람들과 고래와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 새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밤새 민박 집 주인과 어부와 동장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눈다고 분위기에 취해 피곤한지도 모르고 밤을 그렇게 보냈다.
바다로 나간 첫째 날
지난 밤새도록 마을 사람들과 이야길 나눈 탓에 피곤함이 컸지만 그래도 도착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일어 난 시각은 06시 10분이었다. 습관처럼 짧은 머리카락에 드라이기를 갖다 대니 전기가 흐르지 않았다. 고장이 났을까?. 이런 오지에서 내가 멋 부릴 일이 아니다 그냥 햇빛을 가리려면 창 모자 사용하면 되니 예쁜 스타일을 위해 굳이 드라이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스스로 달랬다.
아침 식사식탁에 앉았다. 아침이라고 차려진 것은 이 빠진 컵에 따뜻한 홍차와 비스킷 몇 조각뿐이었다. 아침에 바다로 나가면 오후가 되어 돌아올 거라며 아주머니가 물을 챙겨 주셨다. 민박집에서 마당을 나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니 해변가 도착했다. 다시 말하면 바다가 코앞이다. 바다를 볼 때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고래를 잡는다고 생각하니 옛 애인을 만나는 것 보다 마음이 더 설렌다.
<고래 잡으로 목선을 타고 출발 뒤배경이 라마레마 마을이다>
해변에는 작은 목선들이 잔뜩 보관되어 있었으니 선착장이나 해변이라는 표현보다는 사실 나룻배를 두는 곳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겠다. 어부들은 고래잡이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겼다. 라마레라 사람들은 모두가 가톨릭 신자들이기에 출발 전 큰소리로 함께 기도를 드렸다.
우리는 배에 올라탔다. 자~ 지금 우리는 큰 어선을 타고 작은 멸치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목선을 타고 목선보다 더 큰 고래를 잡으러 간다. 신호등이 없는 바다이기에 막힘이 없는 바다. 작은 물결에 배가 일렁거리자 내 마음도 덩달아 일렁거렸다.
십 여분 정도 갔을까, 어부들은 한 번 더 큰소리로 안전을 위해 합창 기도했고 나는 마음 속으로 꿈에 그리던 고래를 만나고 싶다며 기도를 했다. 물이 맑아서 바다 밑바닥이 훤히 보인다. 산호와 조개 그리고 청색 열대어들 바다 속을 마구 헤집고 다니고 내 마음도 신난다.
이십분 정도 모터로 가더니 모터를 끄고 돛을 달았다. 나는 궁금증이 발동했다.
『 고래는 언제 어떻게 잡아요?』
띠깜(Tikam)이라는 창살잡이가 말했다.
『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 고래가 나타나면 그때 창살로 잡아요. 』
그렇다면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데. 기다림을 가장 견디지 못한 나에게 인내의 쓴 맛을 공부 할 기회인 것 같다.
햇살이 머리 위에 앉아 뜨겁다. 햇살을 털어내자 또 다른 햇살이 내려 앉았다. 바다 위에 쏟아진 햇살은 마치, 은빛 갈치가 파닥이는 것처럼 살아 움직인다. 5시간이 지났다. 낚시꾼들은 어떻게 기다릴까, 그리고 여섯 시간째 이리저리 왔다 갔다. 그야말로 바람따라 가는 우리는 부평초였다.
서서히 지루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구경거리가 없는 바다. 가끔 배 옆으로 물고기들이 쏜살같이 날아 갔다. 물결위 저공자세가 얼마나 빠른지 순식간에 지루함이 사라졌다.
공해가 없는 곳의 햇빛은 강렬했다.
내 몸의 기운은 처음 출발 고래와 만난다는 그 설렘은 어디로 가고 가을날 담벼락에 걸어 둔 시래기처럼 시들어 갔다.
햇살이 바늘처럼 강하게 내리 꽂히니 갈증이 나고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대신 물을 마셨다. 아침 밥을 생각하니 저녁밥 메뉴는 안 먹어도 뻔 한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촬영 온다고 할 때 수라바야에서 백수 아주머니가 김치와 고추장을 준다고 할 때 가져 올걸 』하고 말하자. 제작진이
『 우리가 지금 여기 여행 왔어요? 』
『 아 참, 그렇지 하도 지루해서 그러지 』
행여나 고래가 보일까 하는 마음으로 바다를 살핀다. 그리고 또 몇 시간이 흘렀다. 이번에는 제작진이
『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 두루치기해서 먹었으면... 』하고 말한다. 이번에는 내가
『 아니, 지금 우리가 바다 낚시 하러 놀러 왔어요 야채도 없다는 이곳에서 대충먹어야지 』
말하면서 제작진 얼굴을 쳐다보니 가을 날 단풍처럼 햇살에 발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 목소리에 힘이 들어 있었다.
『 저기 고래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손짓하며 『 Dia ! Dia ! 』소리 질렀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어부가 손짓해 주는 저 먼 곳으로 바라보는데 『 어, 정말 고래가 푸 우~ 』 하며 물을 뿜어내는 것이 아닌가. 와, 신기하다. 어른들 말씀대로 고래만한 검은 집 한 채가 움직였다. 어부들은 몸에 둘렀던 천을 막대기에 걸어 흔들어 대며 마을로 SOS을 알렸다.
잠시 후 여섯 척의 작은 배들이 우리 배를 도우려고 왔다. 고래와 마을 사람들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고래는 『 나 잡아 봐라 』하며 바다를 헤엄쳐 다니다가 잠수 해 버렸다. 그 때마다 우리는 고래가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사라진 버린 방향을 보고 있으면 반대 편 방향에서 꼬리를 흔들어 댔고. 어부들은 낡은 막대기를 저으며 그 쪽으로 고래를 좇아갔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냈을까, 한참 후 저 멀리 고래는 예쁘고 선명하게 꼬리를 한들거리며 내일 만나자는 식의 인사를 나누고는 빠른 속도로 멀리 멀리 사라졌다.
<창으로 고래잡는 띠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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