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와 채무자의 운명
글/별과달
내가 사는 곳은 말랑.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1시간 20분 거리이므로 한인
사회와 조금 떨어진 도시에 살고 있다. 그런 연유로 한국말로 수다 떨 사람도 없고 또 집에
가만히 있으면 이름이 비슷한 ‘그리움과 외로움’ 이란 놈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내 좁은 가슴
에 안긴다. 그래서 시간과 여건이 되면 나는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남의 나라 삶의 현장
속으로 파고든다.
살면서 “선교사?” 라는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는다. 그 때마다 “아니오. 나는 보통 사람입니
다.” 라고 대답한다. 주로 그런 질문은 선교활동 하러 갈 때며 나는 현지인들과 함께 교도소
나 다른 곳으로 봉사 활동하러 다닌 지 3년이 조금 지났다.
교도소에 가서는 너무 친절하지도 무관심하지도 말라는 것이 우리 봉사자들의 원칙이다.
솔직히 말해 남자 교도소에 가면 나는 무서움이 조금씩이 돈다. 그러나 여자 교도소에 가면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로 예배를 드린다. 아리따운 아가씨들 눈에서 떨어지는 청심환
굵기의 눈물 방울들을 받아 주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면 어느 새 나도 훌쩍거리게 된다.
지난 성탄 예배 때 유난히 밝은 얼굴로 우리들을 맞이하시던 아주머니(수미아르시 60)가
생각난다. 악수를 할 때 손을 꼭 잡으며 눈빛이 촉촉하던 그 구릿빛 얼굴, 내 고향 아랫집
영철이네 엄마 같던 그 아주머니의 얼굴. 그에 대하여 목사님께 넌지시 물어 보았더니 그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지가 이제 2년이 되었고 지난 88년부터 올해로 20년째 말랑 교도소에
서 지낸다고 했다.

< 2007년 성탄절 예배 모습 말랑 여자 교도소에서>
어제 밤늦게 핸드폰으로 메시지 한통을 받았다. 그 아주머니(수미아르시)가 종신형에서
얼마 전에 실형으로 선고 되어 오늘 새벽 05;00시에 사형이 진행되니까, 우리 모두 기도를
해 주자는 내용이었다.
그 아주머니의 가족들은 20년 전 루피아 3천 6백만(현/약 4천USD)의 빚을 진 채무자였다.
거친 빚 독촉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채무자네 가족들이 채권자의 집에 가서 일가족(5명)
을 살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를 자동차에 실어 불에 태워 높은 곳에서 낭떠러지로
굴러버린 버린 것이다.
그 아주머니의 남편은 7년 전 감옥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범행에 가담했던 사위
마저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는 아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 것
이다. 아들은 말랑 근교 수라바야 교도소에서 그리고 아주머니는 내가 사는 곳 말랑에서
이다.
인도네시아 사형 방법은 죄수 얼굴을 천으로 뒤집어 씌우고 의자에 앉혀 묶어 두고서 10m
전방에서 10명의 경찰이 총으로 그의 심장을 쏜다. 그 중 한 명만 실탄이 들어 있고 나머지
는 공포탄인 것이다. 요는 실탄을 쏘는 이에게 오발과 심적인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방법이
라고 한다.
그 아주머니의 유언은 먼저 떠난 남편 무덤 옆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들의 유언 또한 엄마 옆에 묻어 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단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종교가 다르면 결혼도 못하듯이 크리스천이 된 엄마와 이슬람교인 아들
이라서 나란히 묻힐 수가 없었다고 한다.
더 잘 살아 보려고 그랬을 터인데......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