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거기 계셨군요(1) - 여호와 이레
글/최원현
통증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떤 말로도 아픔의 고통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 아니 팔 한 쪽, 다리 한 쪽 조차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천만 근 무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응급실로 들어가 X-RAY 사진을 찍었다. 소변 검사를 한다고 소변을 받으라지만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 숨조차 쉴 수 없게 내리 누르는 아픔의 고통 속에서 나는 완전 무방비로 버려진 채 단말마의 비명만을 질러대고 있었다.
응급실의 아침은 병원에서는 하루 중 가장 취약한 사각지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병실의 환자들을 회진하는 시간, 어쩌면 의사로써 가장 권위롭고 보람 넘치는 시간이지 않을까.
각과의 모든 의사 선생님들이 아침 회진에 참여하고 보면 그 시간만큼은 응급실일지라도 잠시이긴 하겠지만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내가 들어간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다행히 집이나 다름없는 내 직장이라 한결 안심이 되긴 했다. 동료들이 출근하여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사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회진중인 의사선생님을 모셔오고, 각과 의사선생님들의 집합된 진단으로 통증의 발원은 신장 쪽 결석이라고 결론이 났고, 급한 대로 통증을 가라앉히는 진통제가 투여되었다.
고통, 인간이 이겨낼 수 있는 아니 참아낼 수 있는 고통의 한계상황은 어디쯤일까? 누구나 자기가 당하는 고통이야말로 가장 크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그런 고통의 극한상황에서도 진통제 주사 한 대로 고통을 잠재울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그런 고통 하나 이겨낼 수 없는 자신에 대해 괜시리 마구 화가 났다. 통증이 수그러들자 그 동안 고통과의 싸움 덕인지 온 몸이 기운 하나 없는 기진 상태가 되어 버린다.
주치의가 정해지고 병실을 배정 받아 입원을 했다. 출근이 곧 입원이 되어버린 셈이다. 비뇨기과 양승철 교수님이 내 주치의가 되었다. 병명은 특수촬영 결과 요로 결석이라 확진 되었다.
워낙 큰놈이 되어서 그냥 빠져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여 수술을 받기로 했다. 신장 조금 아래쪽 요관에 걸려있는 15mm 가량의 결석은 칼날처럼 끝이 날카로워 조금만 움직여도 그때마다 여리디 여린 요관에 상채기를 내어 피가 나게 했고, 그 때 일어나는 기분 나쁜 통증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수술 승낙서를 썼다. 식사가 금지되고 수술을 위하여 배 안에 있는 것들을 씻어내는 관장이 실시되었다. 그 관장 또한 내겐 큰 고역이었다. 비위가 좋지 못한 편인데다 호스를 항문으로 집어넣어 뿜어대는 비눗물이 장으로 역류해 들어올 때의 느낌, 그리고 배설해 버리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참고 있어야 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견디지 어려웠는지 모른다.
이윽고 다음 날 아침 내 이름이 씌어진 비닐 팔찌를 하고, 간디처럼 한쪽만 걸친 수술복으로 갈아 입혀진 채 수술실로 실려 갔다.
죽을병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다시 병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해서 몇 번이고 병실을 둘러보고 갔다는 다른 환자들의 말이 생각났지만 늘 그런 말을 듣고 또 보아왔던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다른 위안거리가 있었는지 비교적 걱정이 되지 않는 마음으로 수술실로 향했다.
철썩 수술실 문이 파도소리를 내며 닫혀 버렸다. 따라오던 가족들과의 헤어짐이 지극히 순간적으로 이루어져 버렸다. 갑자기 불안과 두려움과 그런 중에도 뭔가 모를 안도감이 서로 교차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면서 내 몸은 수술 준비 팀에 의해 발과 양팔이 묶여졌다.
수술 대기실,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있는 가운데 마취의사에 의해 주사를 맞았다. 헌데 갑자기 주위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발과 두 팔이 수술대 위에 묶여진 채 나는 수술대 위에 놓여 있었다.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스텐 거울이 묶여있는 내 전신을 비추고 있었다.
순간 그런 나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비쳐 뵈는 나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과 흡사한가. 묶인 두 팔이며, 발, 그리고 입고 있는 환자복까지도....
갑자기 주님의 모습이 스텐 거울 속에 비쳐진 나의 모습에 오버랩 되어 왔다.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수많은 군중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고, 주님은 고개를 똑바로 하신 채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피를 흘리시면서도 표정은 고통의 모습이 아닌 지극히 평온한 모습이셨다. 그러다가 아주 서서히 주님의 모습이 희미해져 가고 다시 내 모습만 남게 되었다.
아주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그러나 평온한 것 같은 그 표정 속에서 외로움과 안타까움 같은 것이 내 가슴 안으로 마구 몰려들어 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주님이시군요. 저는 제 몸 속에 들어있다는 작은 돌멩이 하나만 꺼내면 되는데도 이 야단을 치는데 주님께선 그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다 맡으시고 그것도 저처럼 묶인 것도 아니고 발과 손에 무자비한 대못 질을 당하신 채 철철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내려다보시던 때 어떠셨을까요. 그런데도 어쩌면 그렇게도 평온할 수 있으셨나요? 내 눈에선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나는 참으로 평온한 마음이 된 채 의식을 잃어갔다.
수술은 순조롭게 잘 되었고, 나를 그토록 고통으로 몰고 갔던 녀석은 밖으로 나오자 원형을 그대로 보존치 못한 채 몇 조각으로 부숴져 버렸지만 15mm가 넘는 큰놈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니까 5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공릉동에 살던 1977년이었던가. ㅅ산업에 근무할 때였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꼭 배라고는 할 수 없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파서 주위를 마구 누르면 조금 나아지고 그러다가 다시 못 견디게 아파 오는 되풀이 속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갔었다.
의사는 쉽게 급성 맹장염이니 수술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쯤엔 아픈 기가 좀 가라앉아 있을 때였다.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언제 다시 아플지 모르니 빨리 준비를 하여 오라고 했다. 집에 들러 수술 준비를 해 가다가 꼭 수술을 받아야 할 것이라면 큰 병원에 가서 받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알음이 있는 청량리 신중병원으로 향했다.
다시 몇 가지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특별히 어렵거나 오래 걸리는 검사가 아니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수술은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것이 아닌가. 염증이 많긴 하지만 그렇게 심한 상태는 아니니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것이다. 그래 나는 다시 배가 아파오자 그때의 맹장염이구나. 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요로 결석이라지 않는가.
모든 게 너무나 감사했다. 여호와 이레 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감사해야 할 지 몰랐다.
그 큰놈이 말썽을 피우지 않고 지금껏 지내올 수 있었던 것과 아프기 시작한 시간이 차에서 거의 내릴 때쯤이어서 무사히 응급실까지 도착할 수가 있었고, 회진이 끝날 무렵쯤이어서 각과의 선생님들이 함께 진단을 내릴 수 있었던 점, 그리고 수술하기에도 가장 좋은 위치에 와 있다는 점, 특히 내가 직장을 옮겨 한 1년여 된 때라 의료진과 직원들의 도움을 넉넉히 받을 수 있었던 점 등 가장 좋은 조건으로 모든 것을 준비하신 후 수술로 인도 하셨던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수술을 하지 않고도 치유를 허락하실 수도 있으셨겠지만 그렇지 않으셨던 데에는 내가 생각지 못하는 그 분의 다른 뜻과 섭리와 계획이 있으셨을 것으로 믿는다.
너른 바다 위에 떠있는 한 잎 낙엽 같은 작은 배,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생각하고, 넓디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두려움과 절망으로 지레 겁에 질리고 말겠지만 한 줄기 은총의 빛살이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게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오히려 그 너른 바다가 평안의 요람이 될 수 있고, 작은 배에 오히려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은총은 나도 모르게 전신으로 감싸오는 훈훈한 온기 마냥 한 겨울에도 추위를 못 느끼게 하는 따스함 같은 것이 아닐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신 이사야서 41장 10절의 말씀은 어려움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하는 귀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선 늘 그렇게 나와 함께 해 오셨던 것이다. 내 병상에 늘 같이 계셨던 하나님, 그런데도 하나님 여기 계시군요. 하고 내가 알아보지 못해도 서운해 하시지도 않으시고 수술실에도 회복실에도 병실에도 없는 것 같이 계셔 주신 그 사랑을 어떻게 감사해야 할 것인가.
열하루 만에 퇴원을 해서 나오던 날, 바람 냄새가 달콤하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할까. 겨울 날 답지 않은 겨울 한 낮을 햇볕이 따사롭게 은총처럼 내리고 있었다. <1996.5. 건강과 생명 '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