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

여행은 일이고 일은 여행이다

좋은 글 모집/늘샘최원현수필

인연의 숲에서

이부김 2008. 6. 1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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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숲에서


                           글/ 최원현

 

 * 아름다운 인연

 

  우리나라 사람처럼 인연을 중시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어떤 만남도 혈연 지연 학연에 연결하면 이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참 묘한 것은 그게 전혀 이상하거나 거북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면부지에도 만난지

몇 분만 되면 너니 나니 하며 말을 트거나 10년 20년 알고 지낸 사이처럼 허물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다 좋은 인연일 수는 없으리라. 그렇기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진실한 만남, 참으로 소중한 만남의 인연은 인생을 참으로 아름답게 변화

시킨다.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참 안타까운 얘길 들었다. 아들 결혼을 시키기 위해 지방에 아파트 하나를 마련했

는데 지방 근무가 풀려 서울 가까이에 사려고 그걸 팔았단다. 그 때 마침 친근히 해 오던 이가 사업상 급하

다며 돈을 빌려 달라 하더란다. 평소 몇 년을 보아왔지만 워낙 신실해 보이고 사람 좋아 보이는 그였기에 딱한

사정을 듣고는 아파트 매각대금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동원해 수억 원을 빌려 주었는데 막상 가져간 후론 달라

져 버렸다는 것이다. 너무 믿었기에 그저 개인 약속어음 용지 한 장 받은 것뿐인데 확인해 보니 거기 적힌

주소도 틀리더란다.


  아무에게나 내 진실을 투자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인 것 같다. 그것은 금고의 비밀번호를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음이다. 사람은 인연을 맺음으로 해서 큰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와 피해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좋은 인연이 되도록 서로가 최선을 다 해야겠지만

속까지는 알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잖은가.


  지인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으면서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 밖에 누구도 탓할 수 없겠지만 좋은 만남 좋은

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시대다. 어느 땐가 그도 마음을 돌이키고 좋은 인연 아름다운 인연을 회복할

거란 희망의 씨를 가슴에 품어본다.



 * 박물관에서


  가야문화 답사 길에 김해 고분박물관엘 들렀다. 20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삶을 본다. 금관가야 최고 지배

계층의 무덤과 그곳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에서 그 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짐작해 본다. 오랜 역사를 가

진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은 그 역사의 전통을 계승하며 그를 통해 반성과 다짐과 미래에 대한 방향 설정으

로까지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이지만 그 역사의 주인은 늘 현재 속에 살아있다 할 것이다.


 수년전 들렀던 워싱턴 DC 스미소니안 박물관이 생각난다. 제임스 스미손이란 사람의 기부금으로 1846년

설립된 종합박물관인데 그 자신은 미국에 가 본 일이 없었으나, 1829년 사망 시 "인류의 지식을 넓히기 위

한 시설을 워싱턴에 세우고 싶다." 는 유언을 하여 55만 달러의 유산으로 박물관을 건립했다 한다.


총 17개의 박물관과 갤러리, 동물원, 리서치센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박물관에는 총 1억4천만 점의 수 공

예품과 견본들이 전시되고 있다 했다. 나는 라이트 형제와 린드버그의 비행기, 달착륙선 등이 전시되어 있는

항공/우주관과 자연사박물관만 급하게 둘러보았으나 그 거대함에 놀라며 큰 부러움을 가졌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오늘이 있게 한 많은 발명품들, 그리고 박물관의 웅장함에서 거대한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김해의 박물관에서 우리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한데 모아 스미소니언과 같이 한 군데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려 인정을 받아야 우리

정체성도 확립될 것이다.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가 몇 백 년 역사의 나라에 위축되는 건 자존심의

문제다.

다행히 가야세계문화축제 등 세계적 행사가 열려 우리 것의 위대함을 널리 알릴 기회가 있다지만 무엇보다

우리 것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잘 지켜내고 알리는데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문화유산이야

말로 어느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우리만의 자랑스러운 힘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수

많은 인연의 결과들이다. 나 또한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이들과 인연 지어졌으리라. 그래서 천년이 넘어

햇빛을 보는 것이건만 그들을 보자 이토록 내 가슴이 뛰었을 게다.




  * 자전거를 타며


 자전거를 탄다. 힘차게 페달을 밟아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두 개의 바퀴에 몸을 싣고 이렇게 달릴 수 있다

것이 신기하다. 넘어질 듯 하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자전거, 어찌 보면 대단히 불안한 탈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람들은 이 두개의 바퀴로도 잘도 속도를 즐긴다. 거기다 몇 단의 기어까지 있어 웬만한 오르막도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자전거 타기는 인생 살기와 닮은 것 같다. 무엇보다 얼마큼은 앞을 멀리 봐야 한다. 너무 가까이만 보면 오히

려 넘어지기 쉽고 시야가 좁아져서 정작 가고자 하는 방향도 잡기가 어려워 가야 할 길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멀리 앞을 내다보면 우선 안정감이 생기고 가야 할 길도 확실히 감 잡을 수 있어 방향 예측을 할 수 있다.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가지만 때로는 한 손만으로도 가야 한다. 흘리는 땀도 닦아야 하고 클랙션도 눌러야

하고 그런가 하면 오르막은 오르막대로 내리막은 내리막대로 잘 조절하여 브레이크를 풀거나 잡거나 하며

가야 한다. 오르막이라고 지레 겁을 먹거나 내리막이라고 만만히 보면 큰일을 당할 수 있다.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도 자전거 타기와 같다. 어느 쪽이건 쉬울 수 없다. 위험도 따르기 마련이다.


   지금 이 자전거는 딸아이에게 내가 선물한 자전거다. 언젠가 인기절정이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타던

자전거와 같은 것이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같은 색깔로 사 주었던 것인데 자주 타지 못하다 보니

타이어가 삭아버렸다 해서 타이어만 새로 교체를 했다.


 자전거를 타고가면 좌우 경치를 보는 것과도 보조를 맞추기가 좋다. 삶은 보조 맞추기다. 그것은 인연의 눈

맞춤이다. 때로는 조금 느리게, 더러는 조금 빠르게, 그러고 보면 자전거 정도가 내게는 딱 맞는 것 같다.


 내 삶을 가게 하는 두 개의 바퀴는 무엇일까, 페달은 무엇일까, 나를 앉히고 있는 안장은 또 무엇일까. 두 개의

바퀴가 만나 하나를 이루어 나아가듯 삶은 바로 다른 하나와 하나가 만나 이루는 조화의 장일 터였다. 자전거

를 탄다. 내 삶의 바퀴를 열심히 굴린다. 발, 손, 눈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자전거 타기에서 내 삶을 다시 챙겨

본다. 가는 길에서 만나고 지나치면서 만나고, 삶은 그렇게 만나고 보내고, 보내고 또 만나는 만남의 장, 그렇게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터이다.

 

             =>  최원현 수필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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