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명절인데 왜 내가 허전하지?
며칠 전, 텔레비전으로 추석으로 인해 귀향 귀성객들의 관한 뉴스로 보면서 잠시 울컥하며
고국과 부모님 생각이 났다.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인도네시아 명절 이둘 피뜨리(Idul Fitri)다.
그런데 즐거운 남의 나라 명절에 왜 벌써부터 내 마음이 텅 빈 것 같고 혼자라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시내로 나가 보면 인도네시아인들이 명절이라고 시장이며 쇼핑 몰이며 난리를 피우고 북적대는 것을 볼 때면 내 마음은 한국 명절 때 보다 더 외롭다. 이럴 땐 남의 나라 명절이지만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잔인한 생각마저 든다.
해마다 이슬람교의 큰 명절, 이둘 피뜨리(Idul Fitri)가 되면 일년 동안 고마웠던 사람이나 친분
있는 분에게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 상대방은 거의 나보다 연상이며 매년 선물의 주인공들이
바뀌고 있었다. 그건 나의 환경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과일가게 가서 여러 개의 바구니를 만들어 내가 직접 가져가기도 하고 카드를
적어 배달시켜 주기도 했다. 과일 바구니를 보내면서 받으면 그들이 참 좋아 할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도 즐거웠다.
깊은 산 속에 가서 고함을 지르면 메아리도 있는데 그들에게서는 메아리도 없다. 그들도 우리들처럼 새해 인사를 다닌다. 그것을 실라뚜로미(Silaturomi)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었다.
선반 위에 두었다가 일요일 아침이면 들고 가지고 가는 그 성경 책속에는 분명 주는 자가
복되다고 적혀 있으니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매년마다 이렇게 많은 과일 바구니를 보내면서
나는 그들에게 실라뚜로미(Silaturomi)를 한 번도 받아 보질 못하였다.
문화 차이일까?
아니야, 어쩌면 그들은 늘 지배당했던 생활로 인해 노예근성이 묻어있어 주인이 주면 받았지
감히 주인에게 드린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남에게
준다는 것 보다는 항상 받는다는 것이 더 우선일 것이다.
그들의 말을 살펴 봐도 그런 것 같다. 상대방에 고맙다는 인사 말은
'뜨리마 까시(Terima kasih)'이다. 먼저 뜨리마(받고) 까시(준다)’는 말이다.
내가 과일바구니를 선물로 보내 주는 사람들이 나 보다 가난한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 보다 훨씬 부자인 사람들도 많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명절이라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어제 밤에는 명절 때 자녀에게
입힐 옷을 마련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옷을 훔치다가 붙잡힌 뉴스TV에 나왔다.
이둘피뜨리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우리 집 가정부는 귀향 길에 가지고 갈 가방을 지난
주에 준비 해 두었다. 앞 집은 오늘 아침에 모두 고향으로 가 버렸다.
그들에게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과일 바구니도 실로뚜라미도 아니다, 다만 함께
북적거리고 싶은 명절 분위기다. 하지만 그들은 늘 나를 이방인으로만 대우해 준다.
남의 나라에 살 수는 있어도 남의 나라 명절 차례상에 함께 어울릴 수는 없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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