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차와 인절미
여름도 지친 한국 8월의 마지막 날,
나는 지리도 잘 모르는 서울에서 20년 만에 동창 둘을 만났다.
전형적인 주부와 수필을 쓰며 수학을 가르친다는 친구는 나를 경기도 성남시 어느 산기슭 전통 찻집으로 데려 갔다.
잘 익어서 쭈글쭈글한 대추를 얇게 썰어 넣고 잣 몇 알이 둥둥 띄워서 나온 대추차.
여름인데조 저녁 때이고 비가 실실 뿌리자, 나는 추위에 견딜 수 없었다.
아니 견디었지만 어깨와 상체는 연탄 불에 구워진 오징어 마냥 오그려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따듯한 대추차와 덤으로 나온 삼색 고물의 말똥구리만한 인절미가 너무 맛있었다.
원래는 손님들에게 인절미를 한번만 주는데,
입담 좋은 한 친구가 무뚝뚝한 주인에게 멀리 인도네시아에서 고국을 방문한 친구라며 나를 팔아먹는 바람에
우리는 인절미를 두 접시 받아 먹었다.
해묵은 동창들의 우정 때문이었을까?
대추 맛은 거의 이십 년 전,
추억을 마시게 했던 대추차.
우리 집 오른쪽 대문 앞에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내가 태어 난 그 해 할아버지께서 내가 컸을 때 대추나무에 대추가 열리거든
삶의 터전을 인도네시아로 옮기려고 부모님께 마지막
‘이제부터 맛있는 대추가 열리면 누가 따 먹지?'
며칠 전 고향 집에 가서 대추나무를 보았더니
팔순이 넘은 부모님처럼 가지는 얼마나 힘없이 축
울긋불긋한 빛깔을 띤 왕대추가 하나가 눈길을 끌기에 따서 깨물자 달싹한 추억의 맛이 온 전신으로 퍼졌다.
성남시의 산기슭 찻집, 자갈 마당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한 모금 남은
이야기를 듣는데 상상력이 점점 커지더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떡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입안에서는
남은 대추차를 마시고
이미 그 인절미는 친구의 입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아~ 아깝다. 인절미여! 공짜라서 더 맛있었던 인절미인데…..
나는 중학교 때 배운 인절미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만약에 인절미가 시집간다면
콩고물과 팥고물로 화장을 하고
얌전히 접시 위에 올라 앉아서
시집을 간다네 입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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