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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일상/인니 한인들

대추차와 인절미

이부김 2006. 9. 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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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추차와 인절미

 

                                                 김 성월

여름도 지친 한국 8월의 마지막 날,

나는 지리도 잘 모르는 서울에서 20년 만에 동창 둘을 만났다.

전형적인 주부와 수필을 쓰며 수학을 가르친다는 친구는 나를 경기도 성남시 어느 산기슭 전통 찻집으로 데려 갔다.

잘 익어서 쭈글쭈글한 대추를 얇게 썰어 넣고 잣 몇 알이 둥둥 띄워서 나온 대추차.

여름인데조 저녁 때이고 비가 실실 뿌리자, 나는 추위에 견딜 수 없었다.

아니 견디었지만 어깨와 상체는 연탄 불에 구워진 오징어 마냥 오그려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따듯한 대추차와 덤으로 나온 삼색 고물의 말똥구리만한 인절미가 너무 맛있었다.

원래는 손님들에게 인절미를 한번만 주는데,

입담 좋은 한 친구가 무뚝뚝한 주인에게 멀리 인도네시아에서 고국을 방문한 친구라며 나를 팔아먹는 바람에

우리는 인절미를 두 접시 받아 먹었다.  

해묵은 동창들의 우정 때문이었을까?

대추 맛은 거의 이십 년 전, 아니 그 훨씬 이전의 맛과 추억을 느낄 수가 있었다.

추억을 마시게 했던 대추차.


 

우리 집 오른쪽 대문 앞에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내가 태어 난 그 해 할아버지께서 내가 컸을 때 대추나무에 대추가 열리거든 따 먹을 수 있도록 심으셨다고 엄마가 자주 말씀하셨다. 대추나무는 해마다 새싹이 나고 꽃이 열매로 바꿔 자라고 있었다.

비오는 날 마당의 대추나무로 가서 여러 장의 잎을 따서 손바닥에 올려 놓고 빗물을 받아 두 손으로 싹싹 비벼대면 거품이 나왔다. 나는 그게 재미있어 비맞아가면서 그런 장난을 많이도 했었다.                 

삶의 터전을 인도네시아로 옮기려고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갔던 날 대추나무는 나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맛있는 대추가 열리면 누가 따 먹지?'

 

며칠 전 고향 집에 가서 대추나무를 보았더니

팔순이 넘은 부모님처럼 가지는 얼마나 힘없이 축 늘어졌는지 이파리들이 마당까지 닿았다.

울긋불긋한 빛깔을 띤 왕대추가 하나가 눈길을 끌기에 따서 깨물자 달싹한 추억의 맛이 온 전신으로 퍼졌다.

 

성남시의 산기슭 찻집, 자갈 마당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한 모금 남은 따뜻한 대추차의 온도를 미지근하게 식히고 있을 즈음, 입담 좋은 친구는 자신이 젊을 때 친정 어머니에게서 배운 송화가루로 떡 만들었던 이야길 했다.

이야기를 듣는데 상상력이 점점 커지더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떡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입안에서는 군침이 가득 고였다.

남은 대추차를 마시고 나의 몫이 아닌 친구의 몫인 인절미까지 먹어야지 하며 도둑 심보로 찻잔을 내리는데

이미 그 인절미는 친구의 입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 아깝다. 인절미여! 공짜라서 더 맛있었던 인절미인데…..


 

나는 중학교 때 배운 인절미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만약에 인절미가 시집간다면

  콩고물과 팥고물로 화장을 하고

  얌전히 접시 위에 올라 앉아서

  시집을 간다네 입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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