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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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취재.촬영/취재 현장 이야기

브로모의 속삭임

이부김 2003. 12. 12.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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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 브르모의 속삭임

 

                                                  글/별과달

 

" 오늘은 화산 브로모로 가자!
마음속에 묻어 둔 할말을 잘도 풀어내는 브로모 산으로 가자! "
이번이 여덟 번째로 가는 브로모 산은 갈 때마다 누구와 함께 왔다는 것도 기억을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고 느낀다.

브로모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 동부에 위치하고 수라바야에서 쁘로볼링고를 거쳐 가면 활화산인 브로모에 도착한다.

여행객들은 자카르타에서 수라바야(제2도시) 그리고 쁘로볼링고에서 내려 또 마이크로형 미니버스를 타야하지만,

나는 우리집(말랑)에서 차 타고 빠수루안을 거쳐 쁘로볼링고를 지나 그곳까지 간다. 빠수루안에서 토사리 산맥을 거쳐 단숨에

가는 길도 있어 가 보았으나, 산세가 너무 험해서 바이킹 타기를 좋아하는 나도 움찔했다.


내가 탄 차는 헉헉거리면서 브로모를 향해 오르막을 오른다. 굽이굽이 비틀어진
오르막길은 높은 산허리를 휘감다 못해 내 허리를 숨막히도록 껴안아 준다. 옆 사람의 어깨를 여러 번 부딪치고 나면 구름이 발아래 깔려 있고 입구에 다다랐는지 숄을 걸친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그렇게 추위를 막기 위해 온 몸에 둘둘 말아 다닌다.

 

유황 냄새가 먼저 달려와 나를 맞아들이고 그 다음 가쁜 호흡을 고르고 나면 눈앞에 큰 분화구가 보인다. 우리는 타고 갔던 차에서 내려 가팔라진 자갈길을 무뚝뚝하게 생긴 지프 차로 내려간다. 전에 지프차 운전수로 두어 번 만났던 그 청년은 오늘 보이지 않는다. 아마, 삼촌을 따라 자동차 수리공으로 취직을 해서 도시로 나간 모양이다.

우리는 지프로 모래 사막을 지나 또 미리 준비 된 말을 타고 올라 가 분화구 아래서 내린다. 큰 대접같은 분화구가 눈앞이 어른거리지만 그곳에 닿으려면 아직 계단 250개를 올라간다.

여행사들은 그 계단을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관광객들에게 선전하는 문구를 나는 본적 있다. 그 문구처럼 정말 천국 가는

길이 그렇게 가깝고 수월하다면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하다만 사랑의 그리움이 질척거리는 이 시간 나는 그 천국에서 영원히

머물고 말것이다.

 

꼬마가 어제 보다 보다 더 많은 용돈을 벌기위해 한 묶음의 꽃을 거꾸로 들고 외친다.
" 이 에델바이스를 사면 행운이 찾아와요. "


잿빛 분화구는 얼핏보면 황량하고 삭막해 보이나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조용히

속삭이는 사랑의 호흡을 들을 수가 있다. 그 속삭이는 숨결도 아침과 한낮이 다르다.

이른 아침에는 밤새 참았던 그 무엇인가를 술술 토해 낸다. 

마치 생솔가지를 태우는 연기 모양으로. 그러나 정오가 조금 기운 때부터는 한 모금씩

 후후 불어 낸다.


잘 익은 백합꽃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 분화구 속에서 혹시, 원시인들이 불을 지피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조반을 준비하느라고 아침나절에는 저렇게도 많은 연기가 나오지

않을까?


2000년 12월 하순 용암이 쏟아져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분화구에서 작은 폭발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2001년 1월 중순 이곳에 왔을 때 이곳 떵거르 사람들이 말하길

 "브로모가 기침을 했다"고 말하며 아직까지는 위험하니 분화구 주위에 오래

있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검은빛을 띤 가루들이 튀어나와 날아다니다가 내 머리에도 딸아이 코에도 아들 녀석

뺨에도 마구 내려앉았다. 조금 지나자 얼굴은 가렵고 눈은 따끔거렸다. 가려움을 참지 못하던 아들 녀석이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자 그 모습은 불장난한 개구쟁이 같았다. 아이들과 내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활화산 브로모(해발2395) 옆에는 사화산 바톡산이라고 있는데 그 산의 모양은 일정한
간격으로 골이 파졌있다. 산언저리에는

고사리가 아우성치듯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날마다 돋아나고 있겠지.


분화구를 내려 와 반시간 정도 지프를 타고 아까보다 더 경사지고 어설픈 산줄기를 잡아 오른다.

뻐난자깐(해발 2650m)이라는 산으로 가기 위해서다.

산은 높아서 밤에는 많이 춥다. 이 산은 주로 일출을 보기 위해 여러번 왔었지만 오늘처럼 대낮에는 처음이다.

한국에 사는 노처녀 친구들과 왔었다. 그들은 밀레니엄해 떠 오르는 첫태양을 바라보면서 지금 사귀는 사람과 결혼을 빌겠다며

다녀갔는데 그 뒤로 사귐이 깨어졌다고 한다. 이유는 전화 통화를 자주 못한 탓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통신사정을 모르고

그런 이유로 헤어짐을 핑계로 삼았다면....

여러 달이 지났지만 그 때 그 언어들의 수다스러웠던 흔적이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그때 우리는 오돌오돌 떨려 컵 라면으로 우선 추위를 덜었다. 뻐난자깐에서 보는
밤하늘의 별들은 그야말로 아이들이

구슬치기하는 것처럼 또르르 굴러가고 있다. 너무 가까워 손을 뻗으면 사과 따듯 쉽게 딸 것만 같다.

아니 손으로 휘젓어버리고 싶다.그러면 별들이 내 손에 묻을 것만 같다.

저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운 '별과 달'이 내 이름이라니 날아 갈 듯한 마음에 풀쩍 뛰어 보다가 넘어졌다.

그래도 안 아팠다.


알알이 영근 석류알처럼 어둠을 벌리고 나오는 해는 우물에 빠진 보름 달처럼 크고 반짝이며 찰랑찰랑

거린다. 널찍한 산정상에는 거의가 서양인들로 빼곡하다. 둥그런 해가 멀쓱한 얼굴을 쑤욱 내밀자,

" 원더풀! 원더풀! "

옆에서는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고 비디오 촬영에다 함성까지 터져 나온다.

환하게 웃으며 떠 오르는 태양을 보니 내 전신은 어질어질한 쾌감 속에서 헤매는 느낌이다.

 



내가 시인이라면 가슴에서 떠오르는 시상으로 한 편의 시를 남겼을 터인데.
이것저것 가슴에서 뜸들이고 맞춤법 수정하다고 보니 세상은 이미 하나 둘씩 드러났다.
벌써 몇 번째였던가,

나는 또 숙맥같이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그 때만큼 브로모와 시인들을 우러러 본적은 없었다.

너절한 말들을 캡슐에 담아내는 인고의 작업, 그건 참 멋스럽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시인을 만나면 나는 우선 악수를 청하고 싶다.

그리고는 브로모의 속삭임과 이별을 참지 못해 눈물어린 눈동자 같은 일출도 권하고 싶다.


*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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