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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김 일상/문학과 사진

인도네시아 라마레라

이부김 2019. 1. 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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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라마레라

고래가 없으면 우리도 없다-

                                                   김성월

 

인도네시아 오지에 가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래잡이가 허용된 곳이 있다. ‘고래가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그들의 생활 신조어다.

자카르타에서 국내선 3시간 타고 서티무르섬에서 또 로컬 비행기로 40분쯤 타고 내린 후, 자동차로 3시간 달리면 산기슭에 해변 마을 라마레라에 도착한다. ‘접시에 담긴 빛이란 뜻의 라마레라는 이름처럼 마을 전경이 아름답다.

오지로 여행하길 좋아하는 내가, 그곳에 갔다가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 떠나오면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 해놓고선 그 후 10년 동안 TV 방송 프로그램 촬영하러 그 마을을 여섯 번이나 더 찾아갔다.

청색으로 물들어진 하늘과 바다는 뒤집어놓아도 상관없는 청정지역이다. 무공해 햇살이 떨어진 바다는 윤슬로 반짝거린다. 어부들과 함께 목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면 수면 위로 물을 뿜어내는 고래와 수천마리의 돌고래들이 장난치며 내 옆으로 지나간다. 그 장면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사진 찍고, 박수치고 사진 찍고 바람에 모자가 날리든 말든 스타일에 신경 쓸 겨를 없이 흥분된 마음으로 즐겼다. 일주일을 그렇게.

 



고래잡이 시즌 오월이 되면 라마레라 사람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마을 지주(Tuan Tanah) 산에 있는 조상들의 혼을 불러 고래바위에서 정령숭배 제를 올리고, 신부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주와 신부가 해변에서 고래잡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리는 라파미사를 지낸다. 라마레라 사람들은 모두 가톨릭 신자들이지만 전통적인 풍습과 가톨릭 종교가 하나로 어우러진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다. 그 행사는 바다의 사는 모든 종류의 어류들을 많이 잡게 해달라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이다. 이를테면 향유고래, 범고래뿐만 아니라 가오리, 개복치, 돌고래, 고래상어까지 잡게 해 달라는 염원이다.

라마레라 사람들이 고래를 잡기 시작 한지는 약 400여 년 전부터라고 옥스퍼드대학 출신 바네스 교수가 말했. 과학적인 근거로 볼 때 이 시기에 수역의 온도가 태평양보다 더 높아져 고래들이 짝짓기나 출산, 수유를 위해 라마레라 마을 앞을 이동하고, 고래먹이가 많이 지나가기에 고래도 덩달아 수면 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화산지대, 척박한 환경이라 농사도 지을 땅도 없고, 눈앞엔 넓은 바다뿐인 그들은 오죽했으면 작살로 고래를 잡으려고 덤벼들었을까? 그들에게 고래 잡는 일은 아주 성스러운 일이다. 집안에 불화가 있을 때 남편이 바다로 나가면 사고를 당하고, 이웃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때도 바다로 나가면 사고를 당한다고 말했다. 고래잡이 나설 때 작살잡이가 뱃머리에서 성수를 뿌린다. 그러면 선원들이 순결해졌다고 믿고 바다로 나간다. 고래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을 통해 보내주신 선물이라 믿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집이든 어디에서든지 앉기만 하면 시선이 바다로 향한다. 그건 선물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고래 잡기 위해 그들은 포경선을 타지 않는다. 작은 목선을 타고 노를 저어 고래를 따라가고 갈고리가 끼워진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는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겠지만, 전통적인 방법으로 오직 생계를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래서 고래잡이가 허용된 마을이다. 그들은 고래가 내뿜는 물줄기만 봐도 고래의 종류를 안다. 물을 비스듬히 뿜으면 향유고래, 위로 향해서 직선으로 뿜으면 그건 대왕고래라고 말한다.

나약한 인간이 커다란 고래 잡는 일은 상당히 위험하다. 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지다가 밧줄에 팔이 걸려서 외팔이가 된 아저씨, 고래꼬리에 맞아 바다에서 실신했다 겨우 살아난 40년 작살잡이 할아버지, 고래에 적중하여 작살에 힘을 실고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그 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과부를 만났을 때 내 가슴은 먹먹했다. 그러나 제대로 꽂히지 않았던 작살 때문에 고래가 몸부림치고 도망가는 바람에 목선이 호주까지 끌려갔다가 호주 당국의 도움으로 비행기 타고 인도네시아로 귀국한 사람들 이야기 들으면서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고래가 잡힌 날이면 마을은 축제분위기다. 해체작업이 시작되면 해변은 분주하다. 모든 사람들이 동원되고 정해진 규칙대로 분배하여 각자의 몫을 가져간다. 고래머리 일부는 마을 지주의 몫이고 과부와 장애인도 옥수수 한 접시를 가져오면 고래 고기를 나눠준다. 집집마다 고래 고기를 양말처럼 줄에 척척 널어 건조한다. 껍질에서 나온 기름은 횃불이나 부엌에서 불 지필 때 사용하고, 배가 아플 때 마시거나 상처에 외용약으로도 사용한다. 고래고기는 토마토와 마늘, 소금, 파파야 잎과 랑께나무 잎을 넣고 볶음요리를 만든다. 내 입맛엔 텁텁하면서도 고소한 맛이라 참치와 닭 가슴살을 연상케 했다. 건조된 고래 고기는 재래시장으로 가져가 쌀과 옥수수와 채소로 물물교환 한다. 고래 하나의 값어치는 옥수수 열 개와 맞바꿀 수 있다.

 









마을이 오지이긴 해도 외국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아 와서 게스트하우스 하나 있고 민박집이 몇 군데 있다. 내가 처음에 갔을 때 주인아저씨는 나에게 욕실 있는 방을 배정해 주었다. 알고 보니 그 방이 그 마을에서 최고로 멋진 방이었다. 그 후 그곳에 갈 때마다 그 방은 내차지였고 두 달 전에도 나는 그 방에서 머물렀다. 갈 때마다 주인아저씨의 모습이 달라지더니 2년 전에 돌아가셨다. 하긴, 두 살배기였던 그 집 손자가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으니. 지금은 아주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산다. 두 달 전에 갔을 때 밤중에 아주머니가 실신하여 응급실에 다녀오기도 했다. 앞으로도 라마레라 가면 나는 그 방에 머물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이다. 돌아다녀 보면 재미난다. 마을에 미용실이 없는지 어설픈 이발사가 해변에서 머리를 깎아 주고, 아이들은 고래 등을 미끄럼틀 삼아 놀고 있다. 바다가 놀이터인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니 작살잡이가 되어 고래를 많이 잡는 것이란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꼬맹이가 굴렁쇠 가지고 놀다가 누런 코가 나오자 훌쩍거려도 또 나오니 나뭇잎으로 쓰윽 닦아 버린다. 반팔 입으니 옷소매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아낙네들은 음식을 머리에 이고 잔칫집으로 가고 엄마 손잡고 따라가는 아이 모습을 보니 내 유년시절을 보는 것 같다. 하늘나라 계시는 엄마 생각나서 나도 그들을 따라 가보기도 했다.

인터넷이 한국에 비해 인도네시아 오지니까, 속 터지는 속도지만. 사람들 손에는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일 년 내내 세계 각국 사람들이 끈임 없이 찾는 곳이 바로 라마레라 그곳이다. 누구나 라마레라에 한 번가 보면 나처럼 또 가고 싶어질 것이다.



2019년 월간 '한국수필' 2월호 실림 독자로 떠나는 수필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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