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타면서 생긴 일
김성월
- 하나. 서울 사람행세
“엄마, 오늘 저녁 약속! 7시까지 서울대입구역에 도착해!”
“그런데 어떻게 가야 하지?”
“집에서 6시 20분 출발, 2호선 타고 홍대입구역 방면으로 쭉 내려가면 돼”
“응 알겠다.”
나도 이제 서울시민들처럼 지하철을 타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자신감이 솟구쳐서 어깨가 으쓱으쓱 해지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18년 차 재외 동포로 인도네시아에 살던 나, TV 드라마나 뉴스 화면에서 시민들이 티머니 교통카드 이용하는 장면이 내 눈에는 꽤 멋있게 보였다. 한국에 가면 나도 지하철 타고 다녀야지 생각했다.
모처럼 고국 방문하여 딸아이 손잡고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TV 뉴스나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들과 또 다른 게 있나 싶어 사람들을 관찰했다. 손잡이도 잡지 않고 서서 전철 리듬을 타며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 머리를 옆 사람에게 어깨에 들이대면서 피곤에 지쳐 잠자는 사람,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 감상하는 사람들 제각각의 모습들이었다.
아직 며칠이 되지 않아서 딸아이와 다니면서 탑승과 환승하는 방법을 배우지만 곧 혼자 탈 수 있을 거다. 그때는 나도 귀에 이어폰 꽂고 노래 들어야지, 다시 말하자면 ‘서울 사람행세’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알려준 시간대로 집을 나섰다. 세어보니 신촌역에서 서울대입구역까지는 12번째 역이다. 혼자 타보니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네. 아마 한참 걸릴 거야. 전화가 왔다.
“엄마 지하철 방향 제대로 탔어?”
“응, 걱정하지 마라.”
몇 개역을 지나쳤다. 사람들이 와르르 내리자 내가 서 있는 곳의 자리가 비었고 나는 잽싸게 앉았다. 옳지, 이때다 싶어서 가방에 있는 이어폰 꺼냈다. 귀에 꽂고 노래를 들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몇 곡이나 들었을까, 눈을 떠보니 다음 역은 ‘사당역’이라고 글자가 보였다. 벽에 붙은 노선을 쳐다보는데 서울대입구역에서 이미 두 개역을 지나쳐 버렸다. 전철이 그렇게 빠르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얼른 이어폰을 뽑고 내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서울대입구역에 내려서 거미줄처럼 복잡한 지하철 출구를 찾기 위해 나는 바쁜 시민들에게 묻고 또 물어 찾아갔다. 보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면서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 둘. 전철에도 급행이?
이제는 한 달이 지났으니 환승이나 역을 지나치는 일은 더 이상 경험하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사업하는 친구가 만났으면 하고 연락이 왔었다.
십오 년 전에 CD 음반 수입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왔던 친구이다. 요즘 카자흐스탄과 합작영화 제작하고 있다며 식사라도 하자고 했다. 세 번이냐 약속을 못 지켰으니 이번에는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그 친구가 변한 모습도 궁금하여 만나러 갔다.
친구에게 내릴 역 이름만 알려주면 나 혼자 갈 수 있다고 아주 자신 있게 말했다. 9호선을 제대로 탔는데 이상하게 국회의사당역에서 전철은 서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이상하다. 왜 이러지 다음번 역에 내렸다. 반대 방향으로 가서 다시 탔다. 되돌아오다가 첫 번째 역에 내리면 된다. 어, 그런데 이번에도 내가 내려야할 국회의사당역을 지나쳐서 처음 내가 탔더 그 역까지 가버렸다.
‘어떻게 하지?’ 안 되겠다.‘ 이렇게 아는 척하고 무작정 탈 게 아니라 왜 전철이 서지도 않고 지나치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내가 탔던 전철은 ‘급행’이라서 내가 내리고자 했던 역은 서지 않았는데 이번에 오는 전철을 타면 내가 내리고자하는 국회의사당역에 정차할 것이라 했다.
전철을 타고 갔다왔다갔다 하다 보니 예상시간 보다 내가 늦게 도착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친구가 물었다.
“혹시 전철 서지 않고 그냥 가는 걸 탄 게 아니야?”
“어, 그걸 어떻게 알아?”
“내 그럴 줄 알았다”
“.......”
-셋.아가씨도 아니면서
주일이다. 수필가 최선생님이 장로님으로 봉사하는 교회 예배드리러 갔었다. 건물이 6층이나 되는 상당히 큰 교회였다. 예배를 마치고 최선생님 댁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오려는데 인도네시아 오래 살았고, 서울에 대하여 잘 모르는 내가 혹여 전철을 잘못 탈까봐 염려가 되었던 최선생님은 자상한 성품처럼 종이에 전철노선을 그려가면서 설명까지 곁들어 주셨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던지 배웅해 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 할 수 있으며 괜찮으니 권사님과 같이 교회가시라고 말려도 권사님 혼자 교회 가라하시고 내가 전철 타는 걸 봐야 마음이 놓이겠다며 전철역까지 배웅해 주셨다.
노선이 그려진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전철을 탔다. 아침 일찍 강남에 있는 교회 간다고 서둘렀던 탓에 피곤했던지 의자에 앉아서 졸다가 눈을 떠보니 내려야 할 신촌역이었다. 얼른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의자에서 일어나 지하철 문을 나오려는데 두세 사람이 동시에 다급하게 불렀다.
“아가씨~”
순간 아가씨도 아니면서 나는 뒤돌아보았다. 그때
“저기요”
하는데 전철 바닥에 곱게 접힌 종이가 떨어져 있었다. 그 종이는 최선생님이 적어 준 종이였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아가씨라고 던져준 그 한마디에 나는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면서 혼자 캐들캐들 웃었다. 여자가 걸어가면서 혼자 희죽거리고 웃는다며 남들이 이상하게 보든 말든 나는 개의치 않고 행복해 했다.
- 의성문학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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