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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일상/인니 한인들

방송 촬영하려다가 내 머리 CT촬영하던 날

이부김 2011. 1. 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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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촬영하려다가 내 머리 CT촬영하던 날

 

                                       별과달

질서정연한 한국 전남 보성녹차 밭에 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뿐짝(puncak)녹차 밭은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푸른 이파리에 길들여진 내 눈에는 녹차 잎인지 도로변 화단의 그냥 이파리들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차가 멈췄다. 내 머리통이 둔기로 얻어 맞아 찢어질듯이 아팠다.

“ 아…….아…….”

의식적으로 손을 머리에 갖다 댔다. 고개를 숙이자, 내가 앉은 의자에 붉은 물방울들이 뚝, 뚝, 뚝 봄날 산골의 얼음물 떨어지듯이 흘러내렸다. 손으로 붉은 방물을 닦아보려고 머리에 얹었던 손을 떼자 뭔가 얼굴로 줄줄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우르르 몰려 들었다. 아,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교통사고구나. 앞좌석에 앉았던 피디는 괜찮았고 나를 보더니 인도네시아 운전기사에게 한국말로 소리쳤다.

“ 야....... 앰뷸런스 불러! 빨리 앰뷸런스”


나는 나에게 말했다.

‘정신을 차려야한다. 여긴 눈감고 쓰러져도 후다닥 달려와 줄 119가 있는 한국도 아니고 이 산중턱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자동차사고로 죽기엔 목숨이 아깝잖아 우주선이라면, 그래도 안 되지 아직은 너무 억울해.'

피디가 인도네시아 사람과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 상황을 내가 컨트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전기사에게

“ 당신 사장님께 빨리 전화하세요.”

“ 제 핸드폰은 Pulsa(요금)가 없어 전화 걸 수 없어요.”

내 핸드폰을 피디에게 주면서 “ 우리 딸아이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렌트카 사장님께 연락하라”고 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핸드폰 꺼내면서 머리 붙잡았던 손을 보니 양손바닥은 붉은 물감놀이 하는 어린아이 손과 같았다.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좀 닦았으면 해서 가방을 열었다. 이리저리 뒤져봤다. 카메라, 수첩, 볼펜 2자루,

핸드폰, 지도 촬영에 필요한 도구들........ 

내 가방 속에는 싸구려 가재손수건 한 장조차도 들어있지 않았다. ‘내가 여자가 맞긴 맞는지, 그저 열정만 가득한 빈껍데기 여성은 아닌지, 허둥대는 나를 거울 보듯이 스스로 관찰되어지고 있었다.

피를 멈추게 하기 위해 이젠 두 손으로 머리를 꾹 누눌 수밖에 밖에 없었다. 기사가 어디서 구했는지 깨끗한 수건 한 장을 내밀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산중턱이고 주말이라 반대편도로는 꽉 막혔었다.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감쌌다. 비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피디는 입었던 잠바로 내 머리를 뒤집어씌우고 내 뒤에서 탔다. 오토바이 한 대에 세 사람이 타고 인근병원으로 갔다.

약 3km를 달렸다. 시골보건소였다. 중년남자가 수술용장갑을 끼더니 상처를 보자고 했다. 보여줬더니 머리위에 찢어졌는데 4시간 이내 병원으로 가서 봉합해야 한다며 인근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오토바이로 가는 시간은 삼십분이 세 시간으로 느껴졌다.


두 번째 병원에서는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보더니 봉합해야 한다며 대단한 각오로 고무장갑을 꼈다. 그 폼이 조폭들 패싸움하려고 장갑끼는 모습과 흡사했다. 그리고는 탁 트인 응급실로 두 명의 남자를 더 불렀다. 세 명의 남자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나를 노려보는데 왠지 무서(?)웠다. 앰뷸런스 타고 한 시간가량 가더라도 더 큰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자기들에게 치료받지 않겠다는 나를 아주 강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가다가 길이 막혀 어찌(?) 될 수도 있는데 맘대로 하라고 격양된 어투로 말했다. 상처에 소독도 해주지 않고 가재붕대만 두 바퀴 칭칭 감아줬다.

 

 

 

세 번째 병원으로 갔다. 이번엔 오토바이가 아닌 응급차에 실려 한결 마음이 놓였다. 허름한 수술실로 들어갔고 여자의사가 상처를 봉합했다. 열 둘하면서 세어보더니 붕대를 감다가 한곳을 더 꿰매야한다며 또 꿰맸다. 봉합이 끝난 후 링커, 주사 뭐 이런 것들도 없이 약 몇 알주고 집에 가라고 했다. 동물병원에 가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인데.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거울을 봤다. 머리 중앙에 손바닥만 한 붕대가 놓여있었다. 머리가 다 헝클어진 내 몰골이 토끼풀 뜯던 북한의 토끼소녀 같았다.

 

네번째 병원으로 자카르타시내로 왔다. 다시 치료받고 CT촬영까지 하고 입원했다. 4년째 단골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모든 걸 도와주시고 좋은 병실에 날마다 한식까지 배달해 주신 "렌트카 사장님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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