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 찍어준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별과달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을까요?
사진은 흘러가는 우리들의 세월을 얼마나 많이 붙잡아 준 추억의 증인이었습니까.
한번 ‘찰~칵’ 하면 사진으로 현상되어 볼 때까지 궁금한 걸 꾹 참고 기다렸고 사진 한 장도 아주 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마는 지금은 '찰칵' 하고 그 다음에는 '어디 보자 에이 다시 찍자' 하는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 동쪽끄트머리에 가면 바뉴왕이가 있습니다.
바뉴왕이는 ‘향기로운 물’이라는 뜻입니다. 임금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첩이 왕비를 시샘하여 왕의 아기를 낳은 것이 아니라 곰과 바람피워 아기를 낳았다며 누명을 씌웠습니다. 왕은 첩의 말만 믿고 왕비를 쫒아냈습니다. 억울한 왕비는 죽은 뒤 물에서 향기가 나면 나의 결백을 믿어 달라고 하며 죽었고 그 물에서 정말로 향기가 났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도시랍니다.
바뉴왕이에는 유명한 활화산 까와이젠의 있습니다. 화산의 위력은 엄청나지만 산허리에 배관을 묻어 뜨거운 유황을
뽑아주가 때문에 까와이젠은 폭발하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독사의 무늬가 화려하고 아름답듯이 그곳의 풍광또한 살아서
움직인답니다.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관광객 프랑스여인이 그 절경을 작은 카메라에 담으려고 뒤로뒤로 물러서다가
절벽으로 떨어졌겠습니까. 안타깝게도 프랑스여인은 그 자리에서 죽었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할 뿐 굳이 설명하라면 한마디로
“가서 보세요! 그러나 조심하세요.”
까와이젠 풍광에 매료된 수십여 명의 외국 관광객들이 오늘도 해발 2,380 미터를 오르내린답니다.
유황배관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가스 마시면 만병의 근원이 되는 줄 뻔히 알지만, 당장 먹고 살아야겠기에
독가스를 마시면서 일하는 광부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하기싫은 일 불구덩이 속에서 유황덩어리 캐는 일은
흔히 말하는 3D 업종이지요. 하지만 그 광산을 나는 ‘5D 업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유황광산에 나는 세 번이나 가 봤습니다.
가스를 마시게 되면 콧물눈물이 나고 호흡 곤란과 위장에 경련까지도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맨 처음 갔을 때
나는 마스크도 없이 손수건만 가지고 갔다가 낮에 들이마신 유황가스를 감당하지 못해 호흡곤란을 겪으며 호텔 욕실에서 혼절했습니다. 그래서 위험(Dangerous)과 어려움(Difficult)을 곱빼기로 추가해서 5D 업종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랍니다.
그런 광산의 광부였다 세상을 떠난 남편의 여운만 안고 살아가는 한 여인을 취재하러 갔습니다. 개울 따라 여인의 집으로
갔는데 마당이 논이었습니다. 혼자사는 여인에게, 그것도 명절날 살아있는 닭한마리로 죽은남편 이야길 듣고자 찾아가는건 참으로 미안하면서도 놀부심보인지도 모릅니다. 손님이 왔다고 화사하게 웃어주는 여인, 시멘트바닥으로 된 응접실에서 소파에 앉으라고 자리 내주는데 하마터면 구멍 난 소파에 내 엉덩이가 빠질 뻔했습니다.
여인의 남편은 수십년 전부터 광산에서 일했고 어느 날 광산에서 돌아 와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배가 아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의사가 왕진와서 주사 두 대를 놓아 주더랍니다.
그런데 주사 맞은 다음날 부터 남편은 말도 못하고 혼수상태가 되었고 그런 남편을 오일 동안 바라만 보다가 저 세상으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광산 쪽으로 고개만 돌려도 눈물난다며 내가 미안한 정도로 여인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 생전의 모습을 보자고 했더니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일생에 딱 한번 찍은 사진이라는데 형체만 있고 얼굴도 알아 볼 수 없는 흑백사진이었습니다.
남편은 절벽에서 유황바구니 메고 서 있는 모습, 평생을 유황만 캐고 져 나르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지요. 그 사진이 바로 절벽에서 떨어진 프랑스여인의 일행이 찍어 준 사진이라고 했습니다.
어깨 멘 유황보다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광부들의 고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릴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한 장씩 보내주면 이렇게 의미가 있구나 하는 걸 알았습니다. 스쳐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찍어 준 사진 한 장이
저렇게 귀한 영정사진으로 사용하는 걸 보면서 많이 반성했었습니다. 앞으로 오지로 가서 사진 찍으면 꼭 그들에게 보내줘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들었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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