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

여행은 일이고 일은 여행이다

인도네시아 일상/인니 한인뉴스 기고

2009년 6월호

이부김 2009. 6. 3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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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재현한 행사

          

 

                                                 별과달

“ 할아버지 구경오셨군요. 몇 가지 질문 드려도 될까요?"

" 그럼 되구말고"

" 지금 연세가 얼마세요?

“ 나이? 나이는 왜 물어?"

" 네, 인터뷰 할 때 원래 그렇게 묻습니다."

" 나 이제 겨우 72살인걸.”

“ 이제 겨우? 할아버지는 참 재밌어요. 이곳에 와 보시니 지금 마음이 어떠하세요?”

“ 와~ 옛날 내 어린 시절이 그대로 떠오르고 감회가 새롭지.”

“ 주로 어떤 것들을 보면 그렇습니까?”

“ 저기 흑백 사진도 다니는 마차들이 그렇고, 여기 파는 과자와 음식들이 어릴 때 즐겨 먹던 것들이지. 엄마에게 사 달라고 많이도 졸랐는데.......”

할아버지는 ‘엄마에게’라는 표현을 하면서 잡았던 할머니 손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는 척하면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는 갑자기

“ 바로 저거야. 내가 엄마에게 매일 사 달라고 졸랐던 것이“

그때 나무젓가락에 조청같은 것을 둘둘 말아 사탕처럼 빨아먹으면서 한무리의 아이들이 지나갔습니다.  총총 걸음으로 다가왔던 할아버지는 다시 총총 걸음 걸으며 인파속으로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에 있는 말랑시는 해마다 말랑 끔발리(Malang Kembali/ Malang Tempo Doeloe) 테마로 행사가 열립니다. 말랑 시내중심가 아름다운 거리 이젠에서 열리는데 2006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5월 21- 24일 개최되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시민들에게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말랑시와 Inggil Documentary에서 공동 주최로 열렸습니다. 조상들의 옛 시절을 내 고장의 고귀한 역사와 문화를 시민들에게 왜곡되지 않게 제대로 알려주고,  차세대들에게는 조상들의 옛 시절을 책으로만 배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행사의 목적이이라 했습니다. 이런 걸 두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요.

아이들은 못 보던 것들이 많아 신기해서 즐겁고, 중년들은 직접 겪지 않았지만 이해가 되니 만족스럽고, 노년들은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지나간 젊음을 보상받는 것 같아 행복한 기운이 샘솟는다고 했습니다. 

 

                             ▲『 행사가 열린 말랑의 이젠거리에 마차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 』

 

말랑 끔발리는 첫날 오프닝 때 갑자기 감자만한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행사위원회에서 재빨리 여러 명의 빠왕(Pawang)들을 불러 그들에게 비가 내리지 못하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연인지 덕분인지 잠시 후 비가 그쳤습니다. 아이러니 하지만 참으로 인도네시아적인 일이기도 하지요.

오프닝 때 올해는 작년과 달리 연극도 있었습니다. 긴 역사를 딱지처럼 꼬깃꼬깃 접어 두었다가 그날 펴 보였습니다. 주민들은 피난가고 군인들은 싸우다가 쓰러져 죽고 그러다가 해방되자 사람들은 기뻐하며 메라뿌띠를 흔들었습니다. 숨죽이며 보던 이들에게 그런 장면들은 마치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냉면 한 그릇씩 나눠주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전쟁 실제상황을 설명해 주는 필름이 상영되자 나는 어릴 적 영화관에서 본 ‘대한뉘우스’가 떠올랐습니다. 오래된 필름이고 화질이 나쁘면 나쁠수록 왠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더욱더 옛날 옛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행사장에는 논밭을 만들어 농부들은 쟁기 끌고 모내기를 하는 모습까지 보여줬습니다. 논둑 원두막에서는 견학 나온 유치원이아들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모퉁이에는 대장간도 있었고 그 시절의 자동차와 낡은 군복 입은 군인들이 장총을 들고 있었습니다. 종일 사람들이 사진을 함께 찍자니 군인들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아이스크림 장수가 지나다니고 원숭이는 신나게 자전거를 탔고 백발의 노부부도 울며 지나가던 아이가 재미있게 바라봤습니다. 행사 기간 동안 낮거리는 탈것들이 가득했었고, 밤에는 사람들의 물결에 휩싸이듯 그렇게 떠밀려 다녔습니다.

 

말랑시는 고산지역이라서 연평균 27-30도 선선한 기후를 유지합니다. 휴양지로 좋은 기후와 환경조건 때문이었는지 네덜란드가 정부가 지배 할 때 말랑은 주요도시 역할을 했습니다. 주요기관으로 사용 되었던 건물이 많습니다. 호텔. 수도원. 성당. 학교. 등이 그렇습니다. 그 당시 인도네시아 라디오방송국(RRI)이던 건물이 지금은 호텔로 성당은 그대로 성당으로 onE 카페도 지금도 카페로 손님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350년 일본 3.5년의 지배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는 기나긴 엄동설한을 견디고 따뜻한 봄날을 맞은 것입니다. 해방을 맞은 그들은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도 기억하지도 말자며 시청 학교 등 몇몇 건물에 남았을 흔적마저 불태웠습니다.

 

현재 말랑 시청은 1919년부터 있었고 그곳 또한 불태워졌던 곳 중의 하나입니다. 시청 앞 말랑 제3 국립고등학교(SMAN-3 Negeri Malang)는 불태워진 목조건물과 일부 마룻바닥을 타일로 교체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학교에 가면 복도와 교실바닥에는 고문당한 포로들이 흘렸다던 핏자국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기저기 남아 있습니다.


말랑 끔발리, 타임머신을 타고 젊었던 세월로 거슬러 간다는 것입니다. 잃었던 젊음을 다시 만나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라 했습니다. ‘청춘을 돌려다오’ 하면서 노래만 할 것이 아니라 젊음의 현장을 만들어 보는 것도 흘러가는 시간을 운전하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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