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림병, 기념하는 리엽바다 제(祭) 별과달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사는 한국분이 내가 사는 휴양지며 교육도시인 말랑이나 근교지역을 '오지'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괜찮습니다. 오지든 두메산골이든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인도네시아 와 보지 않은 분들은 인도네시아 전체가 오지의 나라인 줄로 알고 있는데. 오지에 가면 도시에서 할 수 없는 현장 체험거리가 많기 때문이지요. 유년시절 여름방학 때 외할머니 댁에 가서 채집해 놓은 추억의 전리품을 열어 보고 그때 그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답니다. 세월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흙으로 된 논둑이 콘크리트로 변하지 않는 이상 시골사람들의 인심은 그래도 명절 날 인심처럼 늘 풍성 할 겁니다.
↑ 절벽에서 스사지를 바다로 보내는 장면 인도네시아 모든 것의 온상지 자바 섬, 동부 끄트머리에 가면 말랑이 있습니다. 말랑 시내서 차타고 3시간 갑니다. 꼬부랑 할머니도 피해 갈 꼬불꼬불한 길 따라 울창한 자띠나무 숲도 지납니다. 절벽 모퉁이를 끼고 돌면 사탕수수 밭이 나오고 계속가면 가면 리엽(Ngliyep)마을입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그곳 사람들의 특유한 전통문화 바다 제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경치 좋은 리엽입니다.
리엽사람들은 자와 달력으로 마울룯(2월)에 동물들의 머리를 스사지(Sesaji/제물)라 하여 바다에 빠뜨립니다. 이런 전통은 1913년경 솔로 지역의 마타람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마을에는 심한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아침나절에 돌림병에 걸리면 저녁녘에 죽어 나가자 리엽사람들에게는 상당한 근심거리였습니다. 그러던 중 마을의 장로 한 사람이 신께 간절히 기도하여 답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대로 마을 앞바다에 동물(염소,닭, 곡식)들의 머리를 스사지로 바치자 마을 사람들의 병이 더 이상 걸리지도 않고 걸린 사람 또한 나았다고 했습니다. 돌림병이 나았다는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를 올리는 것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답니다.
↑와양꿀릳하고 있는 뻐달랑(중간에 사람)
마울룯 의식 전날은 밤새도록 '와양꿀릿/Wayang Kulit'을 공연이 있습니다. 이 와양꿀릿(그림자 인형극)은 동물들의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약 200여 가지나 되고 사람들에게 아주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인형극은 뻐달랑/pedalang이라는 사람이 혼자 밤새도록하며 자와 말로 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 옛날 영웅들의 이야기나 시사적이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람들의 관심거리를 주제로 합니다. 뻐달랑 입담에 따라 사람들은 울기도, 웃기도 합니다. ↑ 와양꿀릳 뒤에서 본 인형의 그림자 ↑건두리/집으로 가져가는 음식
다음 날 아침, 마을의 장로(長老) 집에 모여 아침부터 소, 염소와 닭 등을 잡아 남자들만 요리를 합니다. 이날 남자들은 아침부터 요리를 다 만들 때까지 금식하고 여자들의 부엌 출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예전에 음식을 요리하는데 한 여자가 와서 거든다고 하였는데 그날 오후까지도 음식들이 익지가 않았다 또 종일 비가 오는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형편 되는대로 닭이든 쌀이든 성의껏 가져왔습니다. 하오의 햇살을 머리에 와 있을 때 스사지를 가지고 바다로 갔습니다. 바다 앞에서 간단한 의식을 하고 여인네들이 여물통에 절구 찧은 소리를 들으며 준비된 스사지를 가지고 구눙꿈방(Gunung Kumbang)이라는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그곳 절벽에서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스사지를 바다로 빠뜨렸습니다. 이때 바다에 빠뜨리는 것은 동물들의 머리와 가죽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해변에 모여 있는 것은 바다로 내버려진 스사지가 파도로 밀려 해변으로 나오면 그것을 건지려는 것입니다.
↑의식이 끝난 스사지가 파도에 밀려오면 건지려는 사람들의 모습
그 의식이 끝나면 마을로 돌아와 아침에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눠 먹습니다. 자띠나무 이파리에 포장 된 밥과 고기는 마을의 대표 한 사람이 장부를 들고 이름을 불러 체크 한 후 공평하게 나눠주었습니다. 내가 본 그런 장면들은 아주 예전에 우리 마을 사람들도 잔칫날 저렇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날 의식을 자바어로 ‘건두레안(Gendurean:안녕을 기원)이라 하고, 그 음식을 건두리(Genduri)라 하는데 그곳에서는 그저 맛만 보고 집으로 가져갑니다. 집에서 한꺼번에 다 먹지 않고 두고두고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밥이 아니라 약으로 생각한다고 촌장님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어쩌면 '밥이 보약'이란 말을 그들에게 억지로라도 갖다 붙이면 딱 어울리는 말인 것 같습니다. 리엽바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서 만들어 진 물부스러기들은 하얀 세제보다 더 희고 거품도 많습니다. 취재하러 전국 여러 곳곳을 다녀보았지만 리엽 촌장의 친절이 유난히 고마웠습니다. 첫날 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였고 너무 피곤해서 다음 날 늦잠 자며 꾸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온다던 사람이 연락이 없자 염려가 되었던지 언제 오느냐고 전화까지 해 주신 촌장님과 나와 함께 사진 찍고 사진 보내달라던 팔순노인 리엽 장로도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4월호<별과달이 비추는 오지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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