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할머니와 우리 할머니 원래 할머니들은 다 인자하고 자상하실까? 자상하고 인자한 성품을 가지다 보면 이미 할머니가 되어 있는 걸까? '할머니'라고 부르기만 해도 무조건 내 편이고 엄마에게 부리던 어리광보다 몇 배로 더 부려도 다 들어 주실 것만 같은 할머니. 할머니들은 죽기만을 기다리는 세대들이 아니라 빛바랜 청춘을 간직하고 계신 사랑의 세대들이다. 며칠 전, 나는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 기법 바틱의 장인 니나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처음에 취미로 하다가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가문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 지금까지 바틱 수공예 제품을 만드는 일과 수강생들도 양성하고 계신 분이다. 니나 그 할머니께서는 먼저 바틱 전통과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고 나중에 실습을 하도록 나에게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다.
< 바틱 장인 니라 산또소 할머니>
장인이신 니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간간이 나의 할머니를 떠 올렸다. 할머니는 어릴 적 나와 제일 친한 친구였다. 뒤뜰에 말없이 떨어진 감꽃들을 실에 꿰어 나와 함께 목걸이를 만들었다. 섬돌에 앉아 마주 앉아 나에게 구구단도 가르쳐 주셨다. 마당에서 노닐던 암탉과 병아리들이 대문 밖으로 나가면 탱자나무 울타리에 숨었던 이웃집 수탉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왔고, 그걸 보신 할머니를 나를 부르셨다. 나는 한 걸음에 달려가 회초리로 수탉을 쫓아냈다. 바틱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 났고 나의 취재 메모도 끝났다. 이제 실습하는 시간이 되었다. 니나 할머니는 * 짠딩에 녹인 밀랍을 넣고 후후~ 불어서 밑그림이 글린 천위에 그리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짠띵 속에 든 밀랍이 굳어지기 전에 불고 그려야 하는데 나는 서툴러 밀랍을 천에 쏟기도 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호기심이 많아 눈으로 보는 것은 해 봐야하고, 때로는 덜렁대고 더러는 칠칠맞다는 생각도 든다. 옆에서 열심히 지도해 주는 할머니의 성의를 봐서라도 잘 그리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뜨거운 밀랍이 오른 손 가운데 손가락으로 뚝뚝 흘려 내렸다. "앗 뜨거" 하자 니나 할머니는 얼른 천으로 내 손가락을 닦아 주셨다. 니나 할머니가 닦아 준 내 오른 손 가운데 손가락은 우리 할머니와 나 사이에 뜨거운 밀랍보다 더 뜨거운 사연을 가지고 있다. 6살 때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촌과 함께 작두 놀이를 한 적 있다. 어른들이 소여물로 쓰려고 짚단을 작두 속에 넣어 써는 일이 재미있어 보여 꼭 해 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못 살아도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사촌은 무거운 작두를 들어 올렸다가 발로 디디면서 내리고 나는 아래서 시퍼런 작두 날 아래로 짚단 넣어 주는 일을 했다. 뭉툭한 짚단이 깔끔하게 썰리자 재미가 났다. 짚단 하나를 다하고 두 번째 중간 쯤 했을 때였다. 짚단을 잘못 넣어 내가 "잠깐만" 했지만 무거운 작두는 이미 내려오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가 축 늘어진 것 같고 피는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울었고 할머니가 달려 와 손가락을 바로 잡고 약을 뿌려 주셨다. 그 약이 요즘 약국에 파는 것이 아니고 갑오징어 배속에서 꺼낸 흰색 조각이었는데 갈아서 뿌려 주셨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지금은 아주 조금 표가 날 정도로 삐뚤어진 가운데 손가락이지만 손가락을 볼 때마다 할머니의 사랑이 떠 올라 나는 열손가락 중에 이 손가락을 제일 사랑한다. 천에 바틱 모양으로 그리는 작업은 참으로 섬세하고 여성적이며 예술적인 기법이었다. 더구나 다소곳하게 앉아서 천에 그릴 때는 숨도 고르면서 그려야 했다. 색깔의 원료는 모두 나무 뿌리나 꽃의 열매들을 삶아서 그 물로 염색을 하고 했다. 통을 번갈아 가며 천을 물에 담굴 때마다 바틱의 색깔이 달라졌다. 이런 일은 한평생 해 오신 니나 할머니는 내가 떠나 올 때 자신이 손수 만드신 바틱을 한 장 내어 주셨다. 비싼 값으로 팔려지는 수공예 제품 거저 받아 오기도 뭐하고 사양하면 결례가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장인의 솜씨를 돈으로 계산 할 만큼 나는 부자가 아니다. 이런 걸 받아야하나 말아야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고맙다며 받고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기 전 뭔가 잊어버린 듯이 나는 할머니 아랫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바틱 값에는 전혀 못 미치겠지만 니나 할머니와 수강생들이 오늘 맛있는 점심 식사하라며 몇 푼 쥐어 주었다. 취재 하러 다니면서 인정과 인정이 연결될 때 내 마음은 흐뭇하고 가장 보람을 느낀다.
< 일일 수강생 바틱 공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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