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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일상/인니 한인들

깡통김치

이부김 2008. 6. 25.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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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통김치

                

                                               글/별과달

    “ 박사님 지금 자카르타 공항인데 저희들 도착 시간이 원래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더

    늦을 것 같습니다. 비행기 출발이 한 시간 지연됩니다. 나중에 공항에 도착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 그래요. 그렇게 해요”

    약속보다도 늦게 공항에 도착했는데 게다가 핸드폰이 자꾸만 꺼지고 말썽을 피운다. 아침 6시부터

    사용해서 그런지 핸드폰 배터리가 거의 없었다. 켜면 꺼지고...... 그래서 잠시 꺼두면 잠깐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꺼 두었다.

    몸은 먼저 출구에 와 있는데 가방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보니 공항 안에서만 20여분이

    더 흘러가고 있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니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공중전화도 안 보였고

    내 마음속에는 오직 빨리 가야지하는 생각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택시 안에서 핸드폰을 켜도 자꾸만 꺼진다. 그러는 중 택시 기사는 다 왔는데 이 근처 같다고 말했다.

    어두운 밤이고 통화 중 끊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 박사님 저희들이 방금 도착해서 주소 알려주신 데까지 왔습니다만 찾기가 힘듭니다. 기사에게

    위치를 자세하게 알려 주세요“ 하는데 전화가 끊겼다.

    아차, 이거 큰일 났네!. 나는 택시 트렁크 속 나의 가방에서 재빨리 충전기를 꺼내 경비 초소에 있는

    전기 콘센트를 찾아 꽂아서 핸드폰으로 다시 전화를 걸어 

    " 오늘은 인사만 드리겠습니다." 했건만 그래도 약속시간이 늦었다고 안 만나시겠단다.

    그 먼 길을 달려온 우리 제작팀에게 그것도 당신을 촬영하러 왔는데, 일부러 늦은 것도 아닌데,

    무조건 내일 아침에 만나자는 말만 남긴 채 전화는 연줄 끊기듯이 뚝, 끊겼다.


    다음 날 사무실에서 만났다.

    내가 본 그분의 첫 모습은 긴 머리를 새끼 꼬듯이 꼬아 들어 올린 머리가 마치 비녀 꽂은 옛날 아낙네와

    같았다. 그분은 의자에 편한 자세로 앉은 채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 나는 죽기만 기다리는 세대의 사람들이 되긴 싫어 그래서 이렇게 일을 하지요. 내가 젊었을 때의 꿈은

    퀴리부인처럼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가장 궁금하던 것을 나는 질문했다.

    “ 어떻게 해서 김치 박사라고 불리세요?”

    “ 그때 사람들이 나보고 ‘깡통김치’라고 불렀지요.“

    “ 왜 깡통김치에요.”

    전쟁 중이었는데 김치를 꼭 가져가고 싶어 항아리에다 넣었고 배에 실었는데 항아리가 깨어지는 바람에

    김치 냄새가 진동을 하여 적군에게 들키는 소동까지도 벌어졌다던 이야기.

                
          월남전에 참가했다가 미국으로 이주했던 분들은 아마 지금도 깡통김치의 맛을 기억 할 것이다. 며
          아득한
과거를 회상하며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들이라 아무리 귀를 쫑긋하고 들어도 상상이 잘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러면서 그는 김치의 대하여 자세하게 적힌 영문으로 된 자신의 책을 펴서 잠깐 언급 하셨다.

    “ 김치는 원래 감채인데 소금에 절인 야채라는 뜻인데 달고, 쓰고, 맵고, 짜고, 고소한 맛을 가지고 있지."

    라고 하셨다.

    80세라는 나이. 그건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분 운동으로 골프 연습도 하고 달빛이 수영장에 빠지는 날이면 수영장에서 물놀이 하는 것이 아주

    운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저울질을 했다. 달밤에 하는 체조가 더 운동이 될까? 

    달빛에 하는 수영이 더 운동이 될까? 


    그분은 새로 개발한 김치인데 앞으로 시중에 판매될 샘플들이라며 작은 병들을 나란히 정리하셨다.

    잠시라도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움직이셨다. 언뜻봐도 정정한 육십대 같아 고왔다.

    나는 그 분을 바라보면서 근면을 배우고 나도 저렇게 삶을 즐기며 알차게 살아야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돈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돈을 남이 헤프게 써버린다면 아까울 것이다. 또 시간은 나이에

    비례한다. 이를테면 사십대인 나에게는 하루가 40km씩 흘러가지만 80대인 그분에게는 하루가 80km씩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식이 떠오르자 나는 그 분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작은 다짐을 했다.

    누군가 나와의 약속 시간에 조금 늦게 와도 내 집 앞까지 찾아오는 사람 있으면 만나서 알밤을 주더라도

    꼭 만나 줘야지 저렇게 어두운 밤에 그냥 돌려 보내지는 않아야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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