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과 두리안
글/최원현
여행길에선 만나는 즐거움들이 크다. 특히 그 나라 그 지방만의 특산물이나 음식과의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그곳에 가야만 보고, 맛 볼 수 있는 음식, 가져갈 수도 없기에 그곳에서만 먹어야 하는 것들은 더욱 그렇다.
싱가폴에서 특이한 모습의 건물을 보았다. ‘에스프레네이드’라는 오페라 하우스인데 건물이 보여주는 저 형상은
무엇일까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두리안’이란 과일의 형상이라 했다. 해서 ‘두리안 빌딩’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헌데 싱가폴의 대표적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건축물이 하필 두리안이란 과일 모양일까. 두리안에 대한 궁금증이
갑자기 몰려왔다.
일정 중 잠시 짬이 나 재래시장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시장 입구 과일가게에서 그 오페라하우스 모양의 과일과
만났다. 우리나라의 큰 솔방울보다도 훨씬 크고, 가시가 둘러있는 것은 마치 거북선의 지붕을 연상케 하는 약간
눌린 공 모양의 타원형이었다. 지름은 20cm 정도인데 단단한 껍질과 가시 채로 노르스름하게 익어 있었다. 일단
맛을 봐야 할 것 같아 잘 익은 것으로 골라 달라고 했더니 두리안은 잘 익어야 맛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익어야 맛이 난다고 했다.
10달러를 주고 세 개를 샀다. 그러나 가시가 너무 날카로워 손에 받아 들기도 어려웠다. ‘두리’(Duri)는 인도네시
아어로 ‘가시’를 뜻하는데 그래서 두리안이란다. 어떻게 먹느냐고 했더니 칼로 쪼개서 그 안에 든 것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더니 칼로 갈라 놓는다. 크림 같아 보이는 노오란
과육이 가득 차 있었다.
헌데 이상야릇한 냄새가 났다. 맛을 보기도 전에 고약한 냄새가 입맛을 막아버릴 것 같다. 이런 걸 어떻게 먹는담.
다들 선뜻 다가들지를 못 한다. 그렇지만 이곳까지 와서 두리안도 못 먹어보고 갔다는 불명예는 안고 가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용감하게 먼저 나서서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손에 물컹거리는 감촉도 그렇지만 입속으로 녹아드는
맛은 꼭 무엇이다 표현할 수 없는 향긋함과 느끼함이 범벅이 된 결코 우리 입맛은 아닌 그런 맛이었다. 하기야
나라마다 사람마다 즐기는 맛도 다를 거였다. 우리가 아니라고 저들도 아닌 것은 아닐 거였다.
두리안은 5개의 타원형 방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방마다 크림 빛 과육이 가득 차 있었다. 입에 넣은 과육은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슬슬 녹아드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스레 적응이 되지 않는 역겨움으로 느껴졌다.
어떤 이는 양파 썩는 냄새 같다고 하고 청국장 뜨는 냄새 같다고도 했지만 내겐 그렇게 고약하게는 느껴지진
않아도 여하튼 기분이 좋지 않은 냄새였다. 하지만 막상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맛은 그렇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냄새로 인한 선입견만 버린다면 맛을 음미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래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지옥 같은 향기 천국 같은 맛’이라 표현 했나보다. 외국인의 경우 처음 맛을 보는
사람은 그 냄새 때문에 먹을 엄두도 못 내는 경우가 많다 한다. 하지만 여행에서 그곳의 맛을 못 보고 가는 것은
반을 놓치고 가는 것이 아니랴. 나는 좀 더 먹어보면 이내 맛에 익숙해질까 해서 두 조각을 더 먹어보았다.
하지만 뒷맛은 역시 좋지 않았다. 더는 먹을 수가 없었다. 마침 옆 테이블의 말레시아인인 듯한 남 녀 셋이서
두리안을 먹고 있었다. 그들은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미 맛을
본 뒤여서인지 오히려 그 사람들이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이순자 여사가 전두환 대통령과 이곳에 왔을 때 이
두리안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있는 동안 내내 이것만 먹었다는 걸 보면 한국 사람에겐 맞지 않는 맛이라고도 못
할 것 같다.
여하튼 ’가시를 가진 과일‘이란 뜻을 가진 ‘두리안'(Durian)은 열대 과일 중 최고인 만큼 가장 비싸기로도 유명
하단다. 그래서 쉽게 사먹을 수 없어서인지 두리안에 얽힌 이야기도 있었다.
말레시아 무슬림(회교도)들은 부인을 여러 명 둘 수가 있는데 둘째 부인을 얻을 때는 법적으로 본처의 동의가
필요 하단다. 그래서 만일 본처가 고개를 저어버리면 혼사가 이루어지지 못 하는데 이 때 신랑이 될 남편은 잘
익은 두리안을 사들고 장인을 찾아가 딸에게 압력을 넣어 주도록 사정을 한다고 한다. 결국 본처는 두리안을 먹을
욕심에 동의안에 서명을 해 주는데 이 때 필히 죽을 때까지 두리안을 원 없이 먹게 해 준다는 조건을 단다고 한다.
그만큼 두리안은 그곳 사람들에게 최고의 과일인 셈이다.
<두리안 속살>
그런가 하면 아이들 교육에도 이 두리안을 이용 한다는데 말을 안 듣는 아이에게 가시 돋친 두리안을 품에 안고
한 시간씩 서있는 벌을 준다고 한다. 가시가 굵고 날카로워 살짝 안고 있어야 하는데 여차 잘못하여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발등을 찍혀 상처를 입게 되므로 들고 있는 것 자체가 아주 큰 두려움이요 부담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그렇게도 좋아하는 과일이면서도 두리안으로 벌을 주겠다고 하면 가장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두리안의 성질은 우리 청국장과 많이 닮은 것 같다. 청국장도 냄새가 나서 그렇지 막상 맛을 알게 되면 결코
멀리할 수 없는 음식이다. 그 사람들에게 우리 청국장 맛을 보게 한다면 어떨까. 역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냄새가
고약하다고 맛은 어떻더라도 포기하고 말까?
음식이란 맛이 제일이지만 먹음직에 앞서 보암직도 해야지 않을까. 문득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두리안과 같이
처음에는 근접하기 어렵지만 친해보면 진실이 넘치는 것처럼 청국장 맛처럼 감칠맛이 나는 게 또한 우리나라 사람
아니던가.
여행길에서 두리안을 만나 청국장 생각을 하게 되니 유난스레 청국장 맛이 그리워진다. 어디선가 읽은 글에
동남아 불법 취업자들의 모임에 누군가 두리안을 가져갔다고 했다. 그리움과 향수, 두리안이 그들의 마음을
얼마나 다독여 주었을까. 두리안은 그들을 위한 최고의 배려였을 것 같다. 두리안 덕택에 나도 새삼 조국애까지
생각케 된다.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두리안 빌딩을 생각하니 더욱 청국장이 먹고 싶어진다.
최원현 수필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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