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

여행은 일이고 일은 여행이다

좋은 글 모집/늘샘최원현수필

섬이 되어

이부김 2008. 5. 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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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이 되어

 

 

                                  글/최원현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하나 안타까워지는 것이 있다.

속마음을 나눌 상대를 계속 잃어간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아무 때나 불러내어 답답한 마음을 다 얘기할 수 있는 친구도 많았다.
더러는 생각의 차이로 크게 다투기도 하여 그 서운함이 오랜 동안 남아있기도 했으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고 막힌 서로의 가슴들을 뚫어주곤 했었다.

헌데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르고 보니 친한 친구라 해도 내 기분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이것저것 상대의 기분과 처지를 먼저 헤아리다 보면 내 사정은 하찮은 게 되어버리고,

내 기분도 뒷전이 되고 만다.

하기야 요즘처럼 사는 것이 복잡하고 힘겨운 때엔 다들 지치고 상처 난 가슴들뿐이니 친구의 사정이라도

귀기울여 줄 여유나 함께 걱정하며 해결책을 찾아줄 마음씀을 쉽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랜만에 맞는 휴일이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각기 일을 좇아 나가버린 집에서 모처럼 나만의 시간으로 여유를 좀 부려볼까 했다. 그런데

바람처럼 슬며시 외로움이 몰려든다.

북적대던 삶의 마당에서만 있었기 때문일까.
갑자기 세상에 나만 남겨진 것 같은 느낌, 바깥에선 차 소리가 여느 때 마냥 여전하고, 사람들도 저마다 바쁜

삶이련만 문 하나를 닫고 나니 절해고도(絶海孤島)가 여기이고, 적막감으로 두려움까지 더해진다.
바쁘게 살던 때는 이런 한가한 시간을 그토록 원했는데 막상 그런 시간을 갖게 되니 되려 불안해 지는 것이다.

그만큼 부산한 삶에 길들여져 살았다는 얘기일 것 같다.

외로움은 그리움이라 했던가.

사실 외롭다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그리움에 대한 강한 바램이리라.

문득 전화라도 걸고 싶어진다.
이 밀폐된 공간에 숨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같이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이른 아침에 누구에게 전화를 걸 것인가.
더구나 애들도 아닌 이 나이에 특별한 볼일도 없이 내 기분이 이래서 전화를 했네 할 수도 없고, 그러다가 그가

아닌 누가 전화를 받으면 또 무어라고 말하며 바꿔달라고 할 것인가. 하지만 더 문제는 그렇게 전화를 걸만한

상대도 냉큼 떠올라 주지 않는 것이었다.

저마다 휴일을 즐기려는 계획들이 있을 터에 나만 바보스런 몸짓으로 궁상을 떨고 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 설 연휴 때였다.

형님처럼 따르고 있는 소설가 ㅊ 선생이 설날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하셨다.
아침 일찍 큰 형님 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나면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랑 지내지요 할 수도 없고, 그냥 못들은 체 하고 말았지만 그 분만의 아픔은 아닐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이란 바다에서 저마다 섬이 되어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시골길을 가다가 외딴 집 하나를 발견했다.
다복솔 산을 등에 업은 채 한껏 평화로워 보이는 집이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사람이 살고있지 않았다.
큰방과 부엌, 그리고 작은 창에까지 나무 빗장이 질러져 있었다.

폐가라면 저렇게는 해놓지 않았을 텐데 하며 의아해 하고 있는데 밭에서 일하던 아낙이 나를 보았는지 다가와

누굴 찾느냐고 했다.

그냥 지나다 집이 있어 들른 것이라고 했더니 이 집엔 안 노인 한 분만 계셨는데 혼자 사시겠다는 걸 딸들이

도시로 막무가내 모셔갔다고 했다. 그런데 노인 말씀이 딸네 집엔 잠시 들렀다 다시 와서 살 것이라며 부득불

저렇게 해놓고 가셨다는 것이다.

사정이 어쩌면 그렇게도 내 외할머니와 같은 지 모르겠다.
집의 구조며, 집이 앉은 모양새와 분위기까지도 그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발길이 이리로 향해졌는가 보다.
그래도 이 할머니는 행복한 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만의 공간, 당신의 집이 있다는 여유로움이 늘 가슴을 채우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내 외할머니는 막내 이모님 댁에서 돌아가시기 1년 전쯤 우리가 우겨서 가제 도구며, 집까지 모두 정리해 버렸었다. 자꾸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시니 아예 갈 곳이 없게 만들어 버리면 체념하시고 새 곳에 마음을

붙이실 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집은 있어도 이미 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면서 그토록 버릇처럼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것인데 우린 그마저 막아버린 셈이었다.

할머니를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우리의 편리와 체면을 더 생각했던 것이고, 마지막 붙들고 있던 그리움의 가닥, 그 희망의 나라에 연결된 한 가닥 자존심의 줄까지 싹뚝 잘라 버린 셈이었다.

넓고 자유롭게 살다가 복잡하고 답답한 도시에 갇혀버린 외할머니는 내내 적응을 못 하시고 당신의 몸을 일으킬

수 있던 마지막 날까지도 어서 집으로 가야 한다며 주섬주섬 행장을 꾸리곤 하셨단다.

외할머니께서 생각하실 수 있던 전부는 단지 당신이 오랜 동안 사시던 집이었고, 그것은 당신의 가슴을 채울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사실이요, 그리움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과 손주며, 증손주까지 있는데도 할머니의 그리움을 채워드리거나 외로움을 가셔 주거나 이해해

줄 수 없던 슬픔과 아픔, 그것은 섬이 되어있는 내가 애태움 하는 그리움이기도 하다.

산다는 것은 짝짓기 게임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구령에 따라 둘씩, 셋씩, 더러는 열 명 또는 그보다도 많게 열심히 짝짓기를 하는 것,

그러다가 어느 순간 덩그마니 홀로가 되는 것, 그것으로 우리의 삶도 마지막이 되는 것 아닐까.

건너편 아파트촌으로부터 어디론가 바쁘게 떠나는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들어온다.

저 사람도 지금의 나와 같은 기분으로 어디론가 휑하니 다녀오려는 것은 아닐까?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그래 언젠가 보았던 그 집엘 가보고 싶다.

지금도 그 집은 그렇게 남아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내가 우려했던 대로 모두 다 없어져 버렸으면 어떡할 것인가.
차라리 확인하지 않고 언제까지든 할머니가 돌아오실 날에 대한 기대를 가슴속에 남겨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람에게 있어서 찾아가 볼 곳이 있다는 것은, 언제든 불러내도 묵묵히 무슨 말이든 다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보다도 더 행복한 일일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절 때가 되면 그토록 불편함을 무릅쓰면서 까지도 고향을 찾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 가슴속에 집 하나, 문 하나를 담고 산다.

그곳은 내 신성하고 비밀한 곳이다.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다.

아침 햇빛이 시나브로 하루를 여는 어느 날,
할머니가 빗장을 풀며 문을 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할머니는 어느새 내 외할머니가 되어있다.

문을 열면 쏟아져 나올 향기로움과 별빛 달빛,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그토록 기다리던 평화요, 감격이요 기쁨이 아니겠는가.

북적대는 삶 속에서도 문득 문득 외로움을 느끼는 군중 속의 이방인,
비단 나뿐이 아니라 현대인들은 그런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그리움을 앓고 살 수 밖에 없나 보다.

내 가슴속의 집은 그런 내 삶 속에 숨통을 내줄 비상구이다.
아니 우리 모두는 그렇게 언젠가는 열어야 할 문 하나씩을 갖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파랑새 같은 문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희망을 잃지 않고 외로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에사 내 집에 왔구먼!'
할머니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다.

그리고 빗장이 풀리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내 가슴의 문도 함께 활짝 열릴 것 같다.

<에세이문학> 2000. 가을호

     

                                 

                         이글은 수필가 최원현 사이트에서 가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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