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누가 차를 밀어야 할 것만 같다. 내가 차를 밀것인가 아니면 기사에게 밀어라고 할 것인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차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이와 가정부 모두
차에서 내리게하고 가정부와 기사에게 차를 밀라고 했다. 나는 가속폐달을 힘껏 밟았다. 그랬더니
차가 앞으로 튕기듯이 달려 나가면서 바퀴에 고여있던 흙탕물이 옆에 서 있던 아이에게로
에누리없이 튀어 버렸다. 아이가 펄뛰 뛰는데 보니까 풀들이 움직였다.
미모사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미모사를 '뿌뜨리 말루(부끄러움 타는 소녀)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길가에 앉아서 미모사를 손으르 건드려 보았다. 손가락이 닿자마자 정말 소녀가 부끄러움 타듯이
잎들을 슬그머니 오무렸다. 나는 바람둥이 처녀 건드리듯 신나서 여기저기 마구 건드려보았다.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듯한 고개를 올라 어느 첩첩 산골 동네에 다다랐다. 가정부 한 사람의 월급이
요즘 돈으로 치자면 한국돈 5만원이다. 잘나가는 분들 호텔에서 차 한잔 값이랄까?
요즘은 초등학교만 졸업한 시골 처녀들도 똥바람이 들어서 그런지 차라리 니코틴마시면서
담배 포장하는 일을 하려고하지 가정부라는 직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산골로
찾아 왔던 것이다.
길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서 손에 들었던 몇개의 사탕을 건네 주면서 물었다.
" 가정부를 찾으러 왔는데 일 할 사람 만날 수 있을까?"
뒷모습이 아주머니로 보이던 아가씨가 말했다. 아마 마을에 가서 물어 보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가정부를 오래하였지만 지금은 약혼을 하고 결혼날을 받아 놓았기에 일을 하고 싶어도
도와 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더니 손에 받아 든 사탕을 입에 까 넣고는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을 찾아 주겠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처음 본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껌이나 사탕이 담배 보다 더 좋다는 것을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그를 따라 가니 마당에 우물이 있는 집을 소개 시켜 주었다. 아주머니와 소근소근 이야길 하더니
옆집에 여자 아이가 있다고 한다. 만나 보고 싶으니 데려오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혼자 오고 있었다.
아이가 없었던지 하기 싫은 모양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등뒤에서 짠~ 하고 아이가
나타났다. 진한 쌍거풀에 맑은 눈동자 가무잡잡한 얼굴에다 청순한 산골소녀였다.
" 너 몇살이니?"
" 16살"
" 어머... 너무 어리다. "
" 엄마 그러면 저 아이는 '소양강 처녀 보다 더 어리네"하고 옆에 있던 딸아이가 말했다.
" 소양강 처녀?"
" 응.. 열여덟 딸기 같이 어린......"
소녀를 데리고 온 아주머니는 그 마을에서는 16살이 어린 나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도 난
어려서 싫다는 의미로 고개를 흔들어 보이자 아주머니는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옆에 아기 앉은
여자는 17살이라고 알려주었다. 애기 엄마였지만 어린티가 줄줄 흘렀다. 그 마을에는 아직도
부모가 정한 사람과 혼인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세상에 아직도 그런일이....
그 마을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가정부 구하러 왔다는 것 사실을 그만 잊어버렸다.
마을을 지나오다 보니 공동 우물가에서 어린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엄마들, 거의가 웃옷을 입지
않았고 긴 막대기 짧은 막대기만 있어도 들고 다니면서 행진하는 아이들 비싼 장난감이 전혀
필요없는 그런 동네였다.
노란색으로 물들인 내 염색 머리가 이상한지 원숭이 쳐다보듯 한참이나 쳐다보던 코흘리개 아이들
내가 사탕 한움쿰을 주니 받고는 인사도 없이 '좋아라`'하고 달아 난다.
나도 어릴적에 저 아이들처럼 이런 산골에서 비슷하게 자랐는데....
전에는 어릴적 산골 추억을 도둑맞고 싶었는데 오늘은 그 도둑 맞고 싶었던 추억이 소중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