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파는 소녀
글/별과달 인도네시아 자바 섬 끄트머리에 가면 ‘바뉴왕이/ Banyuwangi 라는 곳이 있다. 발리 섬과 자바 섬을 연결 해 주는 꺽쇠로 배를 타고 한 시간만 가면 길리마눅/ Gilimanuk 이란 발리 섬 서부에 도착한다. 자와 섬과 발리 섬은 한 시간의 시차를 두고 있다. 그래서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이동함으로 하루를 23시간으로 보낼 수도 있고 25시간으로 살 수도 있다.
바뉴왕이 사람들은 러바란이 지난 열흘 후 ‘스블랑’이란 춤 축제를 연다. 스블랑 춤을 출 때는 팔을 사방으로 높이 들고 추는데 잡귀를 온 사방으로 물리쳐 보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춤 꾼은 해마다 마을 사람들에 의해 선정되며 일생에 한 번만 춤 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월경을 하지 않은 소녀만이 자격이 된다. 춘 꿈이 된 소녀는 화환을 머리에 쓰고 두 눈을 감고 무대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춘다. 춤을 추다가 목도리를 구경꾼들에게 던진다. 그 던진 목도리에 맞은 사람은 무대위로 올라 가 소녀와 함께 춤을 춰야 하는 것이 그들만의 풍습이다. 만약에 춤을 함께 추지 않으면, 춤 축제에 부정이 타거나 자신에게 불행이 닥칠 수도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듯이 축제에 참가한 이상, 그 목도리에 외국인인 내가 맞아도 무대 위에 올라 가 함께 춤을 춰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번 반둥 갔을 때도 순다 족들이 나에게 그렇게 한 적 있다. 맞아도 안 아픈 채찍이라며 사람들이 나를 무대위로 끌어 올려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분위기상 한번 어우러진 적 있다. 그러나 이 스블랑은 가믈란 음악인데다가 춤까지 춰야하고 사람들의 행동이 너무 진지하기에 나는 던지는 목도리에 맞지 않으려고 사뭇 조심했다. 춤이 끝날 무렵 소녀는 꽃 바구니에 기도를 했다. 사람들이 소녀가 파는 스까르(꽃) 한 송이를 사면 원하는 짝을 얻어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춤이 시작하는 날에는 특히, 젊은 남녀들이 많고 또 과부와 홀아비들도 모여 들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사기 위해 난리들이었다. 사랑을 얻기 위한 것은 세상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는 정말로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지 꽃을 산 청년에게 물어 보았다. “무엇 때문에 이 꽃을 샀어요?” 하고 물으니 훤칠하고 잘 생긴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예쁜 애인을 얻고 싶어서요. 실은 얼마 전에 애인과 헤어졌거든요.” 나는 그 청년을 바라보면서 저렇게 괜찮은 청년을 마다한 아가씨는 도대체 어떤 여자였을까? 뿐만 아니라, 그 꽃은 소원도 이루어 주기에 풍년을 기원하며 이 꽃을 논에 꽃아 두겠다며 사 들고 바쁘게 걸어가는 아저씨도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날마다 허리가 아파서 이 꽃을 침대 밑에 넣어 둘 것이라며 들고 가는데 그의 허리가 유난히 굽어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노인들이 등 굽은 것은 진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진실이 아니라 노인들의 아픔이었는가 보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정말 소원을 이루어 준다면 그건, 그 바뉴왕이 사람들의 진실되고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며 나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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