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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김 일상/SNS 취재 활동

호텔마당 쓰는 빗자루소리

이부김 2013. 9. 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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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마당 쓰는 빗자루소리

                                         김성월

 

어제 비행기 2번 갈아타고 오늘은 배를 아홉 시간이나 탔던 탓에 많이 고단했다. 그런데도 이른 새벽잠에서 깼다. 안 깨고 싶어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저절로 깼다. 몇 년 전만해도 시골로 가면 새벽마다 커다란 마이크로 들려오는 머스짓(이슬람사원)의 코란소리가 포근하게 자는 새벽잠을 깨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네시아화가 되어 가는지 이제 코란소리 정도쯤은 귀에 익숙해 잘 들리지도 않고 잠을 깨지도 않는 편이다.

 

그런데 호텔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방안에 누워서 듣고 있자니 유년시절 고향에서 듣던 싸리 빗자루로 마당 쓸던 소리와 리듬이 같았다. 여름날이면 아버지는 가늘고 길게 뻗은 싸리비로 쓱싹쓱싹~ 마당을 쓰셨다. 일찍 일어나는 날은 내가 마당에 물을 뿌려 풀풀 날아다니는 먼지를 잠재우기도 했다.


반다섬으로 들어가는 여객선 선장실에서


그 때문일까,

빗자루 소리에 나는 방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하늘나라 계시는 아버지가 그립기도 하고 고향생각도 나고 또 그때 그 빗자루인가 눈으로 확인도 해보고 싶어,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방밖으로 나왔다. 호텔마당에 있는 고목 아래서 밤새껏 떨어진 낙엽을 쓸어 모으는 빗자루를 바라보았다. 빗자루와 마당 쓰는 사람은 달랐지만 눈 감고 들으면 소리는 같았다. 빗자루가 점점 멀어지면서 마당 쓰는 소리도 약해지고 낙엽이 사라지면서 마당도 점점 깨끗해져 갔다.

호텔은 섬 끝자락 해변에 자리 잡고 있어 그런지 간밤에 기온이 서늘하더니 아침바람이 제법 선선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에 숨어있던 낙엽인지 노란색 이파리 하나가 또르르 굴러갔다. 색깔이 예뻐서 따라갔더니 마당 둑 너머로 굴러 떨어졌다.

마당 둑에 걸터앉아 발을 내리자 발이 바닷물에 잠긴다. 바닷물이 어찌나 맑은지 노란 낙엽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게 보였다. 이상하다. 아까 분명히 노란색 이파리가 하나였는데 수십 개가 가라앉고 있었다. 자세히 내려다보니 노란색 이파리가 아니라 노란색깔 열대어들이 떼 지어 우르르 몰려 다녔다. 우와~ 술라웨시 섬 마나도 부나켄 섬의 바다 속이 아름답지만 스노클링 해야 수중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반다내라 섬에서는 다이빙이나 스노클링하지 않아도 이렇게 열대어를 볼 수 있다는 게 나는 너무 신났다. 아니 즐거워서 죽을 것만 같다.

노란색에 흰줄무늬 그려진 열대어 두세 마리가 말미잘 촉수 사이로 숨었다 나왔다 숨바꼭질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키 작은 산호 하나에 새끼 손톱만한 청색 열대어 열 마리 정도 떼를 지어 놀고 있다.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아 이런 걸 평화롭다 하는 구나 생각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긴 바늘의 성게도 있고 푸른색 불가사리도 있고 그 위로 노르스름한 빛깔의 막대기가 움직였다.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막대기를 따라가면서 어머머, 막대기 움직인다.’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건 나팔물고기라 해요.”

나팔?”

그러고 보니 인도네시아 전통악기 나팔과 흡사하다. 처음 보는 물고기도 신기하지만 그에 걸 맞는 이름도 재미있다. 그런데 누구지 하며 고개를 돌리자 아까 마당 쓸던 아저씨가 빗자루를 들고 지나가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학교 때 생물시간에 무척 궁금했었던 일을 지금이라도 해보려고 나는 아저씨가 든 빗자루를 달라고 해서 받아 들었다. 빗자루막대기로 말미잘을 여기저기 건드렸다. 노란색의 흰줄무늬 그려진 열대어들은 도망가고 말미잘은 촉수를 움츠렸다. 어제 암본서 만났던 경찰이 반다내라 섬에 가면 인도네시아 바다 중에 최고로 아름다운 바다를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도 볼 수 있다고 했을 때 믿기지 않았는데 이제야 실감난다.

 




나는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함께 보고 즐기지 못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어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호텔 앞바다 500미터 앞은 자그마한 화산섬이다. 화산섬과 호텔 사이로 뿍뿍(물고기도 잡고 교통수단으로 타고 다니는 통통배)이 지나가면서 주민들이 손까지 흔들어 주네. 뿍뿍이 사라지고 바다 속을 들여다보니 열대어들은 여전히 평화롭고 놀고 있다. 다음날은 내가 먼저 일어나서 빗질소리를 기다렸다가 소리가 들려면 마당으로 나갔다. 이곳에 머무는 보름동안은 날마다 금속성 알람소리보다는 마당 쓰는 비질 소리를 들으며 하늘의 계신 아버지랑 대화도 나누고 활기찬 아침을 맞아야겠다.

 

반다내라섬은 암본 섬에서 여객선을 아홉 시간이나 타야 한다. 비행기가 있긴 있다. 일주일에 한번 혹은 오 일에 한번 정도로 운행되는데 낡은 경비행기라서 날씨와 국가공휴일에 많이 좌우하기 때문에 표를 샀다고 매번 탈 수 있는 게 아니고 운이 좋아야 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객선 운행은 고정적이지만 이 주일에 한번 다니므로 고립되기 쉬운 스케줄이다,

암본 섬은 자카르타에서 직항으로 다섯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시차도 자카르타보다 두 시간 빨라 한국과 같다. 교통수단이 불편하다보니 외부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섬으로 찾아오는 관광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반다내라섬은 인도네시아 향신료(육두구 정향) 재배단지이고 향신료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던 네덜란드 정부에게는 황금의 섬이었다. 반다내라섬에 속해있는 이웃 섬은 9개이다. 그 섬들마다 특이한 풍경을 가지고 있어 매우 아름다운 곳이며 섬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이 숫처녀처럼 청순한 섬들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2013. 8월 하순경 인도네시아 반다섬내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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