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흘러가는 대로 마냥 따라 흘러갈 수도 없고, 무언가 나다운 내 일을 계속해서 하고싶은
데 그것도 마음뿐이다. 예전에 5년, 10년씩 해야 비로소 숙련이 되고 그래야 제대로 일다운 일이 되던 것들까지 요즘은 사람의 손을 빌지 않고도 기계 혼자서 넉히 해내는가 하면 심지어는
1년씩 걸려도 하기 힘든 일들을 단 몇 시간에 거뜬히 해치우기도 한다.
또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이가 들고 경륜이 쌓여야 무언가 원숙하게 할 수 있다고 인정되던 것
들도 요즘은 옛날 같으면 아직 철도 들지 않았다고 할 젊은이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훨씬
잘 해 내고 있다. 뿐인가.
모처럼 친구와 만나 차 한 잔을 마시려 해도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다. 모두 다 젊은이들이 차지해 버렸고, 그나마 모든 분위기가 젊은이들 위주로 마련되어 있으니 들어가는 순간에 이미 낯설어지고 서먹해 질 뿐 아니라 그런 곳에 들어가 앉아있는 것도 머쓱한 일이지만 ‘당신들 올 자리가 아닙니다’ 하는 듯한 눈초리들로 동물원의 볼거리가 되어버린 것 같아 서둘러 일어나게 된다.
어쩌다 영화관을 가도 젊은이들로 꽉 차있다. 길거리에서도 젊은이들이다. 사회 각계에서 영파워로 활동들이 눈부시도록 돋보이고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오늘이
있게 했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일자리가 없다고 해도 그래도 젊은이들을 원하는 자리는 있다. 일의 능력으로도 시대의 주역들이 젊어지고 있고, 자연 나이든 사람들은 갈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보다도 나를 더욱 주눅들게 하는 것은 그들의 단순한 젊음만이 아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감과 겁 없이 덤벼드는 도전적 용기와 신선할 만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지혜로움이다.
그들은 신세대들답게 컴퓨터 하나면 못 하는 게 없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내 할 수
있게 한다. 무한한 잠재력들이 물을 만난 고기처럼 살아나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새로운 것을
보면 두려움부터 가졌었다. 뒤로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먼저 살폈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새로운 것, 못 보던 것이 있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딪혀간다. 오히려 한 발짝 성큼 다가선다. 손은 벌써 그 새로운 것에 가 닿아있다. 그만큼 시대가 변한 것일까. 사고의 대
전환이 이뤄진 것일까.
어쩌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 아이들을 나무라다가도 흠칫 스스로 놀라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다.
이미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삶을 저들은 살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내 방식은 이미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저들은 우리가 그 오랜 동안 해 온 방식이 아닌 새로운 저들의 방식, 우리의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음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까지도 알아보는 기술까지도 가지고 있다. 세상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 세상을 사는 젊은이들은 더 많이 세상을 바꿔가고 있다.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헉헉대고,
어지러워하는 적응 불능증 환자가 내가 아닌가 싶어지곤 한다.
어쩌다 T.V 앞에 앉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한 가지를 잘 하면 다른 것은 잘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즘 보면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는 춤도 잘 추고 말도 잘 하고
재치도 번뜩인다. 모든 것에 다재다능하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그들만 특별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두중 하나인 그들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라고 하는 우리는 이제 저들과 이 사회에 더 이상 무엇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막막해
짐마저 느끼게 한다.
수필가 B선생님의 수필에 자식들을 위해 서고에서 책을 골라 이것저것 필요한 자료를 찾아주며 자신만이 할 수 있고, 해 줄 수 있는 그 일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내용이 있었다. 다 장성해
버려 이젠 부모의 도움이 별로 필요치 않을 땐데 그래도 자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 중에서도 정말 큰 행복이었던 것이다.
그럴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극단적이고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
은 그래도 어른을 어른으로 섬길 줄도 알고, 자신들의 영역에선 자신감으로 넘치지만 어른들의
영역 또한 충분히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삶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순리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리라.
우리가 지레 소외감을 느꼈던 것이고, 변화에 너무나도 자연스레 적응해 가는 그들을 보고 미리
부터 위기감과 두려움을 느껴버린 것이지만 저들의 발걸음이 빨라 보이는 것도 사실은 아직
저들의 보폭이 우리만큼 되지 않으니 우리가 두 발짝을 걸을 때 저들은 바삐 세 발짝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오늘은 군에 가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자폐아들을 위한 특수교육 일을 하고있는 큰 딸아이가 후원단체에 보내는 공문 작성을 거들어 주었다. 밤새도록 해도 이만한 문안은 못
만들텐데 아빠는 단 몇 분에 해버린다며 빨리 일이 끝나 신나 하는 딸아이를 보며 나 역시
저희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 준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진다. 나이에도 안 맞게 말이다.
요즘 세태에 맞는 우스개 말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을 한 글자로 하면? ‘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을 네 글자로 하면? ‘그래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