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장 받고 갔더니 기부금 요구하던 대학
초대장 받고 갔더니 기부금 요구하던 대학
며칠 전, 한국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상 반대를 위해 시위를 벌렸다. 시민 10만 명의 서명 받기 위해 지하철로 이리저리
힘쓰며 다니는 모습 인터넷으로 통해 보았다. 같은 학부모 입장에서 볼 때 참 기특하다는 느낌이 솟구쳤다. 무거운 등록금으로부터 부모님께 부담 줄여 드리고 자신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 할 줄 아는 역시, 한국인의 대학생들이었다. 한 달전
인도네시아 브라위자야 국립대학( Brawijaya Universitas) 법학과에서 학부모들을 학교로 초청하였다.
첫째 아이가 인도네시아에서 초, 중, 고교를 다녔기에 학교 모임은 익숙해졌다. 대학교에서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겉 봉투에
이름이 적힌 봉투를 받아 드니 기분이 좋아 가고 싶어졌다. 대학교에서는 무슨 일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강당에 들어 서니
화려한 차림의 여자 노래가 끝나자 박수를 쳤다.
이상하다, 분명히 학부모 회의라 했는데 대학교는 고등학교와 달리 회의를 이렇게 하는가 보다, 하긴 그래, 참 여기가 인도네시아지! 하며 혼자 현실을 자각했다. 작은 무대의 음악이 잠잠해지자, 준비된 앞 탁자에 하나 둘씩 앉았고 초청장에 적힌 시간보다 정확히 삼십분 늦게 시작했다. 교수진으로 보이는 사람이 부드럽게 이슬람교식 인사를 했다.
『 아살라아말라이꿈… 당신의 자녀들이 입학한 이 대학 법학과는 인도네시아 대학들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학부모들에게 우선 명문대학이라는 것에 긍지를 갖게 하자. 뭐 이런 식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퍼졌다.
그 다음은
『 학교의 사정이 이만저만 하여 학부모들의 기부금이 이만큼 필요합니다.』
하면서 일인당 등록금의 70% 기부금 형식으로 요구하였다. 학부형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 되었다. 한 아저씨가 마이크를 폼 있게 잡고
『 두 달 전에 우리는 많은 등록금을 냈는데,,, 이건.....너무 무리다.』
그 다음 학부형이 마이크를 넘겨 잡고 ‘일인당 이백이라면 올해 입학 생이 몇 명인가, 어떤 시설에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학부형들의 의견도 쉽게 호응을 할 리가 없었다.
자녀들의 장래를 인질로 잡고 기부금을 요구하는 학교측과는 반대로 학부형들은 이해하고 싫고 받아 들이기에 골치 아픈
현실들이었다. 그 순간 강당의 분위기는 신선한 야채무더기만 없었지, 그야말로 새벽을 깨운 활기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처럼 부산했다. 사실 난 마음속으로 신났다. 보기 드문 흥정이었으니까.
대학교측에서는 경리 과에서 설명을 하고 또 의견이 대립되자. 이번에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학부모가 시설에 필요한 자금 액수와 자세한 명세서 밝혀 줄 것을 요구했다. 학교측은 법대 학생회장까지 동원하였고 학생은 학교측 입장을 자신의 부모를 포함한 학부모님들에게 열심히 설명하였다. 그 학생을 보면서 나는 '뭐, 저런 학생이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는
몇 대의 알밤을 쥐어 박았었다.
한편 학부형들이 학교측에서 제의한 액수가 부담이 된다고 하자, 학교측은 일인당 백 만루피아로 낮추어 2년 동안 분납도
가능하다는 제의를 했다. 그러자 팽팽하던 기부금 명목의 액수는 톱니 바퀴처럼 조금씩 맞물려가더니 일치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학교측이 뜨거운 토론의 멍석을 잠시 접을 계획으로
『 저희들이 마련한 식사를 간단히 하신 다음에 계속..』
식사 후, 나는 아이가 친하다는 교수와 인사를 나누며 납부 방법에 대하여문의 하였더니, 준비된 종이에 복잡한 기입란을 설명해 주며 이해가 안된 부분이 있으면 내일 학생 편으로 알려주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종이를 받아 들고 자리로 와 앉았다. 밤에 우리 아이와 의논을 해 볼참으로 그런데 나를 지켜 보던 다른 학부형들은 내가 이미 납부 방법에 서명을 한 것으로 알고 모두 우르르 몰려 갔다. 이미 식사는 했고, 안 적어 낼 수는 없는 학부형들.
그날 초대된 몇몇 학부형들은 한끼에 백 만루피아 짜리 식사를 한 셈이다.
강당을 나오는데 그 미운 녀석이 서있길래, 어쩌면 한국의 대학생들과 저렇게도 다를까?하는 생각이 들어 힐끔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