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일상/인니 한인들

★ 아니, 마늘까는데..."

이부김 2003. 7. 24.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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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마늘까는데..."

 


                        글/김성월
종일 모자를 쓰고 있더니 이제야 인사를 하는 가로등.
언제 봐도 무덤덤한 산은 구름 대신의 어둠의 숄을 걸치고 있습니다.
다 익은 오늘을 태우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연기를 따라 잡으며 아련한 고향의 기억을 나도 태웁니다.
온 가족이 모여 웃던 아버지 회갑 잔치사진을 보다가 얼굴에 덮고
나는,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고향 친구에게서 산수유가 피었고,
마늘에게는 초록 물기가 있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를 읽고 나는 한참 동안이나 멍했고, 뒷마당의 산수유가 떠 올랐으며,
집 앞 논바닥에 흰적삼 입고 엎드린 아버지와 마늘이 눈에 선했습니다.
나는 정원으로 나가서 얌전하게 핀 장미꽃을 질투라도 하듯이
하나 뚝, 땄습니다. 그 꽃잎을 들여다 보며
'지금 아버지와 엄마는 무얼 하실까? 또 그리운 이들과 친구들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핑돌고 어지러웠습니다.
그 때 나는 지구의 자전을 처음 느꼈습니다. 높낮이가 다른 턱에
걸려 넘어졌던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볼까봐 얼른 일어나려 했으나
중력, 나를 끌어 안는 힘. 그것, 대단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그리움을 먹고 자라는 사랑의 힘이 제일 강한 줄 알았는데.....
아팠습니다. 화가나도록 아팠습니다. 발목과 허리는 내것이 아니었습니다.
발목을 주욱 뻗으면 핏줄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감정을 마음대로 못하는 것도 답답하겠지만, 내 몸을 내 멋대로 못하는 것은
더욱 더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눈 앞에는 잡힐 듯 말 듯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렸습니다.

아곳에 침술이 뛰어난 중국인 노부부가 있는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처럼 아주 자상합니다.
내가 악수 할 때 농담삼아 인사말로 "워 아 니" 라고 말하면
할아버지는 손을 흔들며 "아니야 벌써 잊었나? 니 하우마 " 라고 가르쳐 줍니다.
아픈 발목과 허리에 침을 8개나 놓고 전기선을 이용해 떨리게 합니다.
그 전율의 느낌은 신경을 자극하면서도 리듬의 감각을 타고
내 전신으로 퍼져 다녔습니다. 그 다음 담배처럼 생긴 쑥으로
침 맞은 곳을 따뜻하게 해 주면서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아, 참! 이럴 때 우리 아버지는 '시원하다'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 같았습니다.

젊을 때 지게를 많이 지셨다 던 아버지.
여기 오셨을 때도 다리가 아파 침을 한번 맞으셨는데,
요즘은 다리가 더 많이 아파서 집 앞 마늘 논에도 못 가신다니 ......
가끔 전화를 하면 반가워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하시던 엄마와는
반대로 "우리는 잘 있다. 아이들은 학교 잘 다니고 건강하제?"
단 두 마디로 요금이 비싸다며 항상 예고도 없이 끊어 버리시던 아버지.....

오늘 같은 날은 엄마의 어릴 적 약손이 그립습니다.
밤새 어루만져 주시던 엄마의 사랑 한껏 안겨도 보고 싶고, 음성도
들어 보고 싶지만, 보고픔이 더 커질까 봐 겁이나 참고 또 참습니다.
이국 땅에서 병이 나면 말 할 수 없이 두렵고 외롭고 아픕니다.
몸이든 영혼이든.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면 바람을 쐬러 가던지
술을 찾으면서 몸이 아프면 왜, 엄마를 찾을까,
아이들처럼 아프다고 선뜻 말 못 할 만큼 나는 철이 들었습니다.

스트레스를 온통 뒤집어쓴 순간에도 유머 감각을 가졌던 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던 나.
그런 나에게 사랑하는 친구는
그 많은 봄소식 중에 왜, 하필 산수유와 마늘을 표현했는지?
침 놓으시는 할아버지는 왜, 오늘따라 아버지의 안부를 물으셨는지?
이럴땐, 고국에 대한 기억을 도둑 맞고 싶은데.

가슴까지 쳐들어 온
시린 그리움을 거머쥐고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집니다.
조금 후 날이 어둑해지면 부엌으로 들어가 마늘을 있는데로 다, 까겠습니다.
혹여, '누가 월아, 우니?' 하고 물으면
고개를 흔들어 눈물을 떨군 후 "아니, 마늘 까는데" 라고 말 할겁니다.

의성 문학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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