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후의 무지개
폭풍후의 무지개
김성월
플로레스 섬, 고래잡이마을 사람들은 척박한 화산기슭에 산다. 창 하나로 바다의 고래를 잡는 모습을 촬영했다.
그 후 시간절약을 위해 작은 목선을 타고 다른 섬으로 이동하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더니 폭우가 쏟아지고 풍랑이 일었다. 목선 위 구멍 난 천막에서는 빗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예전에 ‘VJ특공대’ 촬영 왔을 때 너무 힘들어 다시는 안 오겠다고 결심했는데 ‘세계테마기행’ 제작진이 하도 부탁해서 왔더니만 또 같은 고생을 하고 있다.
파도위에서 목선은 그야말로 널뛰기였다. 잠시 목선을 해변에 세우자 말했더니 파도 때문에 목선이 바위에 부딪혀 파손될 수 있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번에는 PD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인도네시아에 119가 있습니까?”
“119? 글쎄요, 핸드폰마저 먹통이 된 이 오지에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각자 믿는 신에게 기도하는 게 최선입니다.”
바람이 불면 빗물이 들어오고 파도가 치면 바닷물이 목선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이 쉴 새 없이 물을 퍼내도 물은 점점 차올라 그들의 엉덩이까지 적시고 있었다.
아, 이제는 내가 죽을 수도 있구나. 마음이 숙연해지더니 가족들이 떠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출발 전에 가족들과 전화통화라도 할 걸. 한솔이 어릴 때 코 닦아 주던 일부터 입학과 졸업, 새로 산 노트북 괜히 가져왔다는 후회와 내가 일하다 죽는다는 게 감사하고 죽으면 방송사에서 가족들에게 얼마의 위로금은 전달하겠지, 가족들에게 마음으로 유서를 쓰는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아마도 제작진 셋도 나처럼 죽음을 앞두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었다.
여기는 고래들이 이동하는 경로이다. 내가 바다에 빠지면 지나가던 고래가 나를 삼킨 후 요나처럼 해변에다 토해줄까? 간절히 기도하면 성경말씀처럼 예수님이 폭풍우를 잔잔하게 멈춰 주실 거야? 죽을 때 죽더라도 기도하다 죽자며 기도하는데 젖은 옷이 차가워 춥고 하품이 나며 졸음이 와 나는 잠이 들었다. 시끄러워 깨어보니 바다위에 현란한 무지개가 떠 있었다.
우리들의 삶도 이 날씨와 같다. 고난주간이 지나야 부활절을 맞이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만한 시련을 주시고 안 되면 피할 길을 주신다더니, 정말 폭풍우에 내가 더 견디질 못할까봐 저체온증으로 나를 잠들게 한 후 무지개를 보여주셨다. 두 번 다시 안 가겠다던 그곳을 ‘모닝와이드’ 촬영하러 또 다녀왔다. 지금은 옛이야기처럼 글을 적지만 그 순간은 정말 심각한 체험현장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때였다.
인도네시아 주님의교회 그레이스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