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김 2015. 11. 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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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밥

 

김성월


팔월 중순 한참 무더운 저녁 무렵이다. 그날은 M문학 회장(76)님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꼭 십 년 만에 만나 뵌다. 그동안 간간이 주고받은 안부에 의하면 심장판막증과 심근경색으로 여러 번 병원 신세를 지셨다는데,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몹시도 궁금했다.

 

대전역 앞 광장, 오가는 인파들 속에 서 계시는 분을 멀리서도 나는 한눈에 척, 알 수 있었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라는 말이 있듯이 얇은 어깨 위로 곱게 빗어 내린 하얀 머릿결과 하얀 와이셔츠가 헐렁한지 바람에 펄럭거렸다. 그 모습이 참 멋있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야위신 분이 대전역 앞에서 이제나저제나 올까 하는 기다림으로 나를 오래(?) 기다리셨다는 그 말씀에 나는 가슴이 저리도록 죄송했다.

어디 그뿐인가, 왼손에는 커다란 부채를 오른손에는 내게 주시려고 책을 10 권정도 들고 계셨다. 책의 무게가 십 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듯했다.

 

대전역 주변에는 편하게 앉아 음식과 차 마실만한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시장기 해결하고 떠나야 할 그런 분위기의 식당과 메뉴들뿐이었다.

그날은 이른 새벽 서울에서 출발하여 대전의 강사뉴스팀과 만나 속리산에서 인터뷰와 야외촬영하고 오는 길이었다. 게다가 멋 낸다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더니 발이 몹시 불편한 상태였다. 역에서 길을 건너 골목까지 걸었다. 골목을 아무리 누비고 다녀도 문인으로서 책을 펴놓고 대화 나눌만한 그런 공간을 못 찾았는데 그때 순대국밥이라 적힌 글자가 커다랗게 보였다.

 

문득, 서울에서 먹었던 순대국밥이 생각났다. 홍대 근처에서 순대국밥이라는 걸 난생처음 먹어보았다. 며칠 후 청계천 옆 광장시장으로 갔다가 시장 골목에 허름하면서 삐딱하게 걸린 간판에 아바이순대국밥이라 적혔기에 들어갔다. 찌그러진 양은 탁자 위에는 수저통과 접시에 깍두기 몇 개와 안 깨물어 봐도 깨물어 본 것처럼 맵게 보이는 풋고추 세 개가 나란히 담아 있었다. 뚝배기에 담겨져 나온 순대국밥, 쫀득쫀득한 순대가 씹히면서 국물과 어우러지는 맛은 어릴 적 시골 잔칫집에서 먹던 그런 국밥 맛이었다.

 

대전의 순대국밥 맛은 어떨까 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은 천장에 달린 선풍기와 협력하여 쉬지 않고 찬바람을 후후 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따뜻한 국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치마를 입은 내가 바닥에서 일어서려고 꿈틀거리자 M 문학 회장님이 재빠르게 일어나 계산대 앞에서 계산하신다. 나는 약간 신경질적이면서 딱딱한 어조로 식당 주인에게 말했다.

아까 들어오면서 식사 값은 제가 지불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주인은 겸연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 글쎄 이 분이, 맨발로 뛰어와서 내가 꼭 계산해야 돼요....... 하시기에하면서 주인이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기 보세요.”

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보았더니 정말로 그분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계산대 앞에 서 계셨다. 그때 주인은 이미 돈을 받아 금고에 넣고 문 닫는 소리가 철컥하고 들렸다.

 

회장님은 16년째 국제교류문단의 M문학을 혼자 이끌어 오신 진정한 문학인이시다. 그런 분께 그것도 십 년 만에 만난 분께 식사 대접하려다 오히려 내가 대접을 받았다. 물론 나를 만나서 반갑고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먹이고 싶은 그 심정은 내가 알고 있다.

그날 순대국밥은 다른 그 어떤 음식보다 더 맛있고 의미 있는 식사 자리였다. 그날 내가 지불할 것이라는 생각에 미처 드리지 못한 인사 지금 드립니다. “ 순대국밥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  미래문학 20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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