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김 2014. 5. 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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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졸업장?

 

  수마트라에 사는 미낭까바우족은 아직도 혈통이나 상속 관계가 어머니를 중심하여 이루어지는 모계사회다. 결혼 후 남편은 아내의 성씨를 자녀들은 어머니의 성씨를 따르는 게 그들 모계사회특징이다. 결혼식은 새색시 시집가는 날이 아니라 새신랑 장가드는 날이다.

 


 

 

 신혼여행 후 친정에서 하룻밤 보내고 시댁에 도착하면 그때서부터 모든 연인들이 그토록 꿈꾸던 보랏빛결혼의 일상이 시작되는 우리와는 달리, 미낭까바우족은 종교부에서 발행하는 성혼수첩 받고 신부 집에서 결혼식 후 신혼여행 생략하고 신랑본가에서 하룻밤 지낸 후 처가로 돌아오면서부터 처가살이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물론 능력 있는 사위는 처월드에 입성하지 않고 분가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시골로 지나가다가 천막 속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면 잔칫집으로 생각하면 된다.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풍습이라며 진행하는 혼인문화가 소소해 보이나 의미와 재미있는 게 많아 눈여겨 볼만하다.



오늘은 미낭까바우(minangkabau)족 전통결혼식에 갔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본 광경은 젊은 여자 손발에 검은색으로 꽃무늬를 그려주고 있었다. 나는 궁금하여 질문했다.

아니, 왜 손에 그런 꽃무늬 그려요?”

이 사람은 지금 처녀졸업(?)장을 받고 있으며 내일부터 유부녀라는 뜻인데 양손 양발에 다 문신해요

아주머니는 잠시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며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다. 꽃그림이 일그러질까봐 얌전히 두 손 내밀고 있는 아가씨에게 나는 최대한 예쁜 목소리로 결혼 축하해요.” 그런데 아가씨는 나를 송아지 손님 쳐다보듯이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아무런 대꾸도 않았다. 거참 기분이 묘해지려는데 아주머니가 이 신부는 농아(聾啞)에요하고 알려줬다.

                    

                                             른당만들기 위해 쇠고기 썰고 있는 모습


 

부엌에는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이쪽은 쇠고기 썰고, 저쪽은 야자가루를 엿기름 짜듯이 하얗게 우려낸 물에 갖은양념을 솥에 붓고 군불처럼 장작불을 지폈다. 바람이 불자 장작불 연기가 얼굴로 쏴~ 눈물콧물 기침까지 났다. 눈을 비비는 나에게 국물이 끓으면 쇠고기를 넣고 한 5시간 더 끓이면 CNN이 뽑은 맛있는 음식 1위 른당(Rendang)인데 잔칫집에서 만든 정통른당은 꼭 먹어보라 미리 권하며 부글부글 끓는 국물을 휘휘 저었다. 희뿌옇던 국물이 졸아들고 초콜릿색 른당이 되었다. 사골처럼 푹 고아진 른당육질이 의외로 질겼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 했으니 꼭꼭 씹었더니 육즙이 장조림 맛이다.


른당(Rendang)만들고 있는 아주머니


 

른당을 먹는 사이 신랑이 도착했다. 짚신도 짝 있다더니, 신랑도 신부와 같은 농아였다. 신부어머니는 딸이 농아라서 노심초사했는데 배필을 만나 결혼하니 기쁘다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맏사위와 함께 살 것 생각하니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식구가 많아져서 좋다며 금방 울다가 웃으며 기뻐하는 장모. 신부어머니께 수화를 잘하는지 묻자 일상적인 것 밥 먹을래? 물 마실래? 사랑한다!’것만 잘 할 수 있다 한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사위와 장모 사이에 무슨 감정표현이 더 필요하겠는가. 사위사랑은 장모라고 했던가, 이럴 때는 이미 장모가 된 지인들의 기뻤던 그 감정을 빌려서라도 여기에 적고 싶다.

 

낮보다 밤이 더 분주한 인도네시아 결혼문화, 음악과 웃음소리가 가득하여 천막 안이 비좁다며 먼 산으로 달려 나가는 불빛을 따라 나도 잔칫집 천막을 나왔다.

                                                       자카르타 경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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