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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에 성기를 조각해둔 월로가이부족들

이부김 2010. 12. 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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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에 성기를 조각해둔 월로가이부족들         

 

산 넘고 마을로 올라가면서 나는 힘들어 허리를 움켜잡고 올라갔다.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키는 높다랗고 가지는 무성한 고목이 보였다. 땅속으로 얌전히 박혀있어야 할 나무뿌리들은 무엇이 그리 갑갑했던지 반항이라도 하듯이 땅밖으로 뻗어 나와 있었다. 뻗어 나온 뿌리들은 가까운 가지끼리 비비꼬아 마을의 개선문을 만들고 있었다.

 

월로가이족장은 그 고목이 처음 이 마을에 살기시작하면서 심었던 것인데, 햇수로 치면 600년이나 됐고 조상들이 심은 나무이기에 후손이 당신들이 고목을 섬기며 보호한다고 역사의 증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고목 밑둥치 골이 파진 곳에 *스사지(Sesaji)들이 놓여 있었는데 발리 섬의 개들처럼 스사지를 먹듯이 마을의 닭들도 그걸 콕콕 쪼아 먹고 있었다. 사람들은 고목에게 예우를 갖추고 고목은 그들의 수호신이 되어 마을을 보살피고 있는 것이 정겹게 느껴졌다.    

 

 

 

                        

월로가이부족들의 갈대로 엮어진 지붕, 집모양도 특이했다. 지붕의 생김새는 지붕을 페인트칠하다가 붓을 세워둔 것처럼 보였고 집집마다 대문에 이상한(?) 걸 조각해 둔 것도 요상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마루 끝에는 과일과 동물모양도 판화처럼 그려져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대문에 남자와 여자의 중요한 부분들만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문을 여는 손잡이는 남자 성기를, 문짝에는 여자의 유방과 자궁의 은밀한 부분까지 묘사하듯이 조각되어 있었다.


집에 왜 저런 걸,

숭배하는 걸까.

숭배가 아니면 감상하는 걸까,

그렇다면 여긴 19세 이상만 사는 걸까,

나는 부족들의 이유를 묻고 싶어 안달이 났다.

 

 

 

 

 

부족의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고 넓은 마당 한가운데는 돌탑으로 쌓은 큰 울타리(kanga)가 있었다. 울타리 안에는 둥글게 돌들이 깔렸고 그 위에 돌 3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그곳은 사끄랄(Sakral), 즉 ‘신성한 곳’이란다. 세워진 돌을 뚜구(Tugu)라는데 설명이 너무 적나라했다. 아래 깔린 돌들은 여자의 자궁, 위에 서 있는 건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이유는 남자는 성기가 우뚝 서야 강하고 용맹하다는 뜻으로 그들은 그걸 볼 때마다 되새긴다고 했다. 그곳은 외부인출입금지이지만 일년에 한번만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란다.


순간, 내가 아줌마라서 다행이다. 저런 설명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으니 그런데 남의 부족들의 신성한 풍습을 전해 들으면서 자꾸 세상(?)적인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려고 목이 가려웠다. 부족장은 침이 튀도록 열심히 나에게 설명했다. 나도 얄궂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웃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어 가면서 진지하게 통역해 주었다.

 

마을 한복판에 돌로 쌓은 크고 둥근 울타리가 있다. 울타리를 깡아(kanga)라 하며 그 안에는 큰 집한 채가 있다. 부족에서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남자들만 그곳에 모여서 회의를 하는 곳이다. 울타리 안에는 둥글게 돌들이 깔려져 있고 그 위에 돌 3개가 꽂혀져 있었다.

 

 

                   
 

돌담울타리 안에는 외부 사람들이 일 년에 한번 들어갈 수 있다. 그때가 바로, 9월의 응구아(Nggua)가 열리는 날이다. 월로가이족들에게 있어 가장 큰 전통축제인 것이다. 부족들 전체가 준비하는 가무와 조상께 제사 드리는 것으로 볼거리가 상당히 많다. 월로가이족은 리아베와(Riabewa)라는 부족의 우두머리가 있고 그 아래 아홉 명의 모살라끼(Mosalaki)들이 있다.

모살라끼는 부족들에게서 지도자로 대우받으며 부족장이기도 하다. 모살라끼들은 나무를 조각하는 솜씨가 뛰어나며 집집마다 새겨진 것들도 집 주인 각자가 새긴 것이라고 했다. 이 축제 때는 조상들께 제사를 드린다.  모살라끼(mosalaki)는 부족들에게서 지도자로 대우받으며 그 행사 때 모든 의식을 도맡아 진행한다.

 

 

 

 

 


 

월로가이 마을의 집들은 지붕이 아주 높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350년 일본의 3년 반 동안 식민지시대로 겪었다. 그 당시 수시로 와서 처녀(12-27세)들을 잡아갔다고 한다. 부모들은 자식을 안 빼앗기려고 광주리에 담아 물건인양 높은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가 밥도 선반위로 올려 주었고 화장실 갈 때만 잠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고 한다. 부족장은 커다란 광주리를 꺼내서 처녀들이 앉았던 모습을 재현해 주었다. 웅크리고 하루 종일 앉아 있었더라면 다리도 아팠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당시에는 MP3가 없어 노래도 못 들었을 것이고 핸드폰이 없어 페이스북도 하지 못했을 터인데 하루 종일 젊은 여아들이 얼마나 두렵고 심심했을까.   

 


 

월로가이족들이 어머니를 귀히 여기는 건 모든 생명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며 조상은 우리를 낳았으니 마땅히 섬겨야하고, 조상은 우리를 낳았으니 섬겨야하고, 땅은 먹을 것을 제공해주니 고마워서, 하늘은 늘 보살펴주니 감사해서, 죽으면 내 영혼은 반드시 끌리무뚜호수로 가니 그 호수 또한 믿는다고 했다. 집 안에는 창고, 안방 부엌까지 다 나눠져 있었다. 거실 같은 곳에 작은 막대기가 세워져 있었고 그 막대기에는 크고 작은 주머니들을 주렁주렁 달아 놓았다. 막대기는 어머니의 몸이고 주머니들은 몸속의 장기들이며 잡곡이나 음식을 주머니들 속에 넣어 두었다가 제사 때 스사지로 사용한다고 했다.

 

가톨릭과 토템이 공존하는 그들의 신앙이 내게는 생소했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도 가톨릭신자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며 절을 하는 것과 그리 다를 게 없는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도네시아 나라가 넓어서 그런지 섬 구석구석으로 다녀보니 참으로 희한하고 얄궂은 부족들도 많았다. 월로가이족들의 신체에 관한 이 신비스러운 풍습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아 천연문화라고 해도 된다.

 

* 스사지;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와 작은 음식들.

 

 

      이 마을은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 엔데에 있는 마을이며 EBS 테마기행 취재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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