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로비에 둔 가방이 사라졌다.
호텔로비에 둔 가방이 사라졌다.
별과달
오늘은 자카르타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지난 번 촬영 첫날 묵었던 호텔인데 피디가 로비에 가방을 두고
바로 앞 레스토랑에서 아침 먹고 오니 가방이 없어진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다행히 카메라는 그대로 있었지만 호텔 체크아웃하고 가던 손님이 피디가방까지 가지고 가 버린 것이었다.
촬영 첫날 아침에 가방을 잊어버렸으니 우리는 난리가 났다.
당장 가방을 찾아내라고 난리를 쳤다.
호텔 경비는 가만히 생각해 보더니 CCTV를 보면 알 것이라고 했다.
호텔직원들과 함께 CCTV을 보면서 범인이 중국 사람이라는 것만 알아냈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간지는 알아 낼 길이 없었고 연락할 번호조차 메모가 되어 있지 않았다.
호텔직원과 함께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고 현장조사를 하고 그러다보니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
가방을 실고 간 차량번호 CCTV에 찍혀서 차량조회를 경찰서에 의뢰해봤지만
인도네시아는 차량조회를 컴퓨터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핸드폰 문자로 하도록 되어 있었다.
편리하게 시대를 앞서간 것인지 너무 어설픈 것인지
문자 회신은 “ 의뢰한 차는 지금 조회중입니다.” 라고 답이 왔는데
그 문자가 끝이다. 결국조회가 안 된다는 것이다. 경찰서에서 도난신고를 한 서류를 받아 쥐고 다시
호텔로 와서 며칠 후에 다시 올 테니 그때가지 가방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더러운 강의 쓰레기 취재하러 현장으로 떠났다.
쓰레기가 가득한 찌떠뿌스의 하천/Citepus Bandung
일주일 동안 피디는 안쓰럽게도 옷을 마음대로 갈아입지 못했다.
나는 슬픈 위안의 농담으로 “괜찮아요. 어차피 우리는 쓰레기 취재하러 다니는데 좋은 옷 입으면
악취가 묻어날 것이고......“
취재하면서도 호텔로 연락하였더니 가방이 발리 옆 롬복까지 실려 갔단다.
우리는 시외 촬영을 마치고 호텔로 찾아갔다.
그 중국인들이 토요일 밤 비행기로 자카르타에 오는데 그때 가방을 가져주기로 했다.
아쉬운 건 피디는 금요일 밤 한국으로 돌아 가야하는 것이었고 나는 다음 날 집으로 돌아한다.
촬영내내 가방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우리는 촬영을 잘 마쳤다.
내일이나 모레면 그 가방이 DHL편으로 MBC으로 보내질 것이다.
어찌보면 마음이 편지 않겠지만, 피디는 PD수첩 제작하다가 W 프로그램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런 추억이 만들어져 앞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방 사건을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 어디 피디뿐이겠는가, 호텔직원도 나도 쉽게는 잊지 못 할 것이다.
취재하러 다니다보면 이보다 더한 에피소드들도 많다. 현장에서 취재하는 나의 일이 올해 6년째 접어들었다.
그 동안 꾸준히 해 온건 KBS '지구촌뉴스' 61편 취재하여 방송되었으니 회갑을 넘긴 셈이다.
공중파 프로그램과 그 외 것들은 35편이다. 그 중 라디오로 방송된 뉴스와 인터넷뉴스(통신원)를 합하면
이미 100편을 훌쩍 넘어서겠지만 조무래기들은 계산에 넣지 않으려한다.
그 많은 프로그램을 취재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현장에서의 애환이 참으로 많았다.
속상함 , 즐거움, 보람을 느끼곤 하지만 매번 촬영하다보면 식사를 제대로 해 본적이 거의 없다.
그리고 부자와 빈자들을 보고 깨닫고 내 삶을 감사하며 지낸 시간들을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또 지구촌뉴스 취재는 나 혼자 현장에 가서 상황판단해야 하는 것이기에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다른 시사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제작진들과 함께 촬영하기 때문에 책임이 덜하고 즐거움이 곱절로 된다.
지구촌뉴스 한편 촬영하러 가는데 거리가 멀면 이틀이 걸렸다.
그렇다면 120일을 꼬박 현장에만 있었다. 시사프로그램은 보통 촬영 기간이 아이템 개수에 따라 다르지만
5일에서 15일까지였고 약 200일로 정도, 다큐멘터리 촬영 때 21일을 제작진들과 함께 호텔에서 지낸 적도 있다.
그렇게 계산해보면 6년에 들어섰지만 근 11달 동안 인도네시아 전국을 떠돌아다닌 셈이다.
만난 피디들만 해도 사십 여명이 넘는다. 왠지 앞으로 그 보따리를 풀어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녹은 쇠에서 나와 쇠를 갊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