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대선배
인생 대선배
별과달
낯선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고향이 어디냐고 묻겠지만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주로 이곳에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그 다음 아이들의 미래에 대하여 서로의 생각을 먼저 묻는다. 그래서 공통점이 있으면 대화의 문이 더 활짝 열린다.
내가 다니는 인도네시아 디아스뽀라교회는 매주 담임목사가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두 주일은 외국인이나 유명한 내국인을 초빙하여 강의식 설교를 듣는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눈물이 고이는 삶의 이야기나 웃음이 자지러지는 유머나 힘겨움의 구덩이속의 ‘기적’같은 심각한 체험을 간증으로 전해주기 때문에 ‘설탕에 개미모이든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어제는 교회 창립 이후 처음으로 한국분이라기에 나는 굉장히 궁금했다. 어떤 분일까 하고. 그분이 자신을 소개하는데 예전에 삼성에 근무하였는데 해외지사에서 우연히 방글라데시인의 설교를 5일간 통역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지금까지 26년째 선교사역 하는 분이었다. 국적도 인도네시아국적이었고 이름만 ‘김종국’이 아니었다면 한국 사람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설교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었다. 수천 명 인도네시아 인파들 속에서 만난 그분과 나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란 한국말 한마디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옆의 사람들은 우리들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들어 본적 없는 한국말들이 인도네시아 인들에게 방언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여러 방면에서 내 인생의 대선배였다. 선배들은 개척정신이 강해 멋있고, 그들 입술에서 떨어지는 경험에 귀 기울여 때로는 순종과 복종을 곁들이면 내 미래의 문이 살며시 열릴 수도 있다.
나는 인도네시아11년 살았는데 그분은 23년 사셨고, 나는 인도네시아교회 성도인데 그분은 목사님으로 선교활동을 23년이나 하셨고, 우리 집 맏이가 대학 졸업반인데 그분의 자녀 중 막내가 벌써 사회인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나눈 대화는 꿀에 절인 꽃잎이었다. 같은 민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통하고 서로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저녁에 시간이 있어 잠시 호텔에서 만났다. 대화중에 자녀들 이야기가 나오자 내 딸아이를 꼭 만나고 싶다하셨다. 늦은 시간이라 미안한맘으로 내가 재삼만류 했지만 그분이 먼저 앞장섰다. 그러자 교회목사님들도 함께 따라나서 우리 집으로 갔다.
그분의 자녀는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고교까지 다니다가 미국에서 대학과 몇 년을 살았는데 우리 아이를 보면 ‘인도네시아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에 대해 잘 모르니 한국 사람도 아닌 것 같다’는 그 표현에 나는 아들이 떠올랐다. "운전 조심해라는 경찰들이 괜히 외국인라고.....".말하자 " 엄마 내가 자와 사투리로 말하면 아무도 내가 한국 사람인줄 모른다." 알게모르게 환경에 의해 정체성이 옅어져가는 재외국민 자녀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것에 잘 도전하는 한국인이라는 그 분의 표현에 나는 아주 진한 동감을 했다. 딸아이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해 주고 메일이나 핸드폰으로 언제든지 연락하라던 그분에게서 인절미같이 끈적거리며 우리는 한국 사람들의 인정을 느꼈다.
오랫동안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어울렸고 몸담고 있는 교회 특별히 봉사한 일이 없다. 그저 교도소방문, 시골교회 동행하는 것과 재해지역으로 구호물품 전하러 갈 때 함께 가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렇지만 한국 분이니까 같은 나라사람이니까 통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며 특별히 사적인 자리를 마련해주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참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