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됨-수필과 나
나에게 수필은 그리움이다.
봄이 가까워지면 봄꽃을 보고파 하고, 가을이 가까워지면 가을 정취를 그려하는 그런 그리움이 아니라 언제
지나버렸는지, 언제부터 있다가 떠나간 것인지 미처 내가 알아차릴 수도 없을 때 내게로 왔다 가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들이다.
그래서일까. 나의 수필 속엔 늘 새벽 이슬에 젖은 것 같은 촉촉함이 베여있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곳에서 밤 내 함초롬이 젖어가던
풀꽃처럼 상큼한 신선함인 것 같으나 슬픔이 가득 담겨있는 이슬, 그 이슬에 스며있는 그리움의 냄새, 나의 수필은 그렇게 늘 아련한 그리움 속에서
출발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누구로 지칭되는 것도 아니다. 어린 날로부터 그런 분위기를 안고 자라온 나의 성정은 나의 내면 깊숙이로 아주
작은 물 줄이 나게 했고, 안으로 흐르던 물 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내로, 강으로 커져 가며 그만큼 내 그리움의 크기, 폭, 깊이도 따라
변해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도 삶 속에서 허우적대며 그런 것들을 추스리거나 의식할 겨를조차 없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무심해
지고, 무감각 해 져 버렸었다. 그런 내게 밖으로 물꼬를 내게 해 주신 분이 서정범 교수님이시다. 그러니까 막연한 그리움들을 구체화시키도록 해
준 셈이라고 할까.
사실 내게 있어서 이런 저런 형태로 글을 써온 것은 상당히 오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때부터 문예담당
선생님과 백일장엘 다니기 시작 했었고, 상도 받았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나는 이미 글과는 떼어버릴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 속에 살아 왔으면서도 문단에 등단을 하겠다던가 하여 애를 태우거나 마음을 졸이거나 어떤
이처럼 앓는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그냥 생활이었기에 일찍부터 필요한대로 글을 써왔었고, 연말이면 신문을 장식하는 신춘
문예 등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신예작가들의 작품들에는 어느 정도 궁금해 할 정도로 신문들을 사다 작품을 읽어보는 등 관심을 갖긴 했지만 특별히
등단을 해야겠다는 필요성이나 욕심을 내보진 않았었다. 그렇게 또 꽤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을 보니
문예진흥원에서 덕수궁 석조전에 문화예술강좌를 개설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살펴보니 퇴근해서 가기도 좋고, 또 시간도 내겐 적당한 시간이었다.
문학강좌는 시, 소설, 수필 등이 종합적으로 강의되는 것이었는데 강사진도 화려할 만큼 훌륭한 분들이었다.
나는 주로 시를 공부 하고자
했었고, 백태종, 이인원, 이영신, 박남주 등 지금은 시인으로 창작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그들과 동인회를 결성하여 시 창작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런데 수필강의가 있던 날, 그곳에서 서 교수님을 만났다. 수필강좌 첫 시간에 교수님은 작품을 한 편씩 써오라는 숙제를 내셨고,
다음 시간에 그것을 읽도록 하셨다. 그런데 내 수필을 들으시곤 한국수필에 초회 추천을 해 주마고 하셨다. 작품이 빼어나서는 아닐 테고 아마도
오랜 동안 글을 써 왔던 내 문장의 호흡이며, 문맥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내 수필의 제목은 '봉숭아꽃'이었다.
그러나 제목에서부터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평이하다는 지적으로 제목을 '발뒤꿈치'로 바꿔 <한국수필>지에 초회 추천을
받았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바로 <책방나들이>란 작품으로 천료(薦了)에 이르렀고,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게 된 것이 벌써
10년을 넘어버린 것이다.
나의 수필은 두 줄기의 흐름을 갖고 있다.
하나는 어머니로 모아지는 이룰 수 없는 그리움의
상(像)들이고, 하나는 어린 날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체 있는 그리움들이다. 지명(知天命)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지금까지 이 두개의
흐름을 깨트리지도 벗어나지도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에 약한 심성 때문일 듯도 싶지만 이만큼 나이가 든 지금에도 어른스러워질 수 없는 내 천성과
나만 남겨놓고 급변해 가는 시대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수필은 어린 날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눈을 감고 식구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을 귀동냥하면서 하늘의 별을 세던 때 같은 편안함을 전제로 한다.
크게 읽는 이를 끌어들일 만한 능력이나 재주도 없을 뿐더러
내용도 특별하지 못한 터이지만 내 첫 문장과 만난 독자는 어떻게든 계속해서 나의 수필 속으로 들어오게 하고 그리고 다 읽은 뒤에는 아주 특별한
감동은 없더라도 작게나마 가슴속에 잔물결의 여운이라도 남는 공감의 수필이 되고자 한다.
누군가는 나의 수필을 두고 여성적이라고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강한 주장이나 단정적인 표현을 가능한 배제하고, 읽는 이에겐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하려는
나의 수필은 무엇보다도 문장은 부드럽게, 그리고 되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 수필의 한 줄기 흐름이 되고있는 기억
속의 어머니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족과 함께 찍은 흑백 사진 한 장과 가물가물한 꽃상여뿐이다. 그것도 막내 이모의 등에 업혀서 아주 잠깐 보았던
부시도록 하얗던 상여 꽃,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이 어머니가 마지막 가시는 길이었을 거라고 스스로 믿음을 더해 가는 그런 기억만큼
나는 내 수필 속에서도 가슴으로 와 닿는 부분까지만 사실로 인정한다. 그러다 보니 늘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남게 되었나 보다.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도 왜 어머니는 하얀 꽃상여였을까 이다. 내 기억 속의 상여들은 대개 색색의 물감을 들여 호화롭게 꽃 장식을 했었고,
또 형편이 어려워 그랬을 리도 없는데 유독 어머니의 상여가 하얀 꽃상여였던 것은 외조부님의 특별한 어떤 뜻이 있으셨던 것인지 지금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전부이다 싶게 깊게 각인 되어 있는 이 기억은 내가 간직하고 있는 가장 확실하고 선명한 색상으로
살아있다.
나의 수필에선 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있게 하려한다. 자칫 과거 지향적이다 보면 진부하단 느낌을 줄 수가 있고, 너무
현재적이다 보면 얼마큼 시간이 지나면 현실감을 잃게 되기 때문에 가급적 현재로부터 과거로 갔다가도 다시 현재로 돌아오되 돌아온 현재는 필히
미래를 여는 현재로 끝마무리를 하려 한다.
곧 체험을 주된 소재로 하는 수필의 한계는 시대성(시간성)일 수도 있다는 염려에서다. 어떠한
특별한 사건이 주가 되어 이뤄진 작품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자칫 시대와 뒤떨어진 이야기가 되어 읽는 이를 전혀 감동시킬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이 좋은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또 하나 나의 수필은 끊임없는 실험정신 속에서 이뤄지는 작품이고
싶다. 끊임없는 연구의 세계 속을 가는 과학자와 같이 수필도 독특한, 남이 가보지 못한 나만의 세계를 찾아내야 하며, 그것은 내가 독자에게 주는
흥미를 유발시키는 차별화로써 읽고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작가로서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수필에서의 실험정신은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기보다는 남이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는 쪽에서 승부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한 편의 동화처럼 잔잔한 감동으로
읽는 이의 가슴을 파고들고 싶은 것이다.
정채봉의 동화에 <우리 부처님>이란 동화가 있었다.
석공은 바위 속에서 큰
미소를 띄고 앉아있는 부처님을 본다.
그는 '부처님, 이젠 그만 밖으로 나오십시오. 제 손을 잡으시고 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십시오.'
한다.
돌을 쪼아 부처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 들어있는 부처를 밖으로 나오게 한다는 발상, 이는 내가 수필 쓰기에서
추구하는 방법이요, 방향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서 수필은 '나'라고 하는 나무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뿌리 끝 물줄이다. 늘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나만의 동굴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말하고, 그 아름다움에 자연스럽게 취할 수 있는
동기이기도 하다.
나의 수필은 내 삶의 이야기들이 나 아닌 다른 읽는 이의 마음속에서 떨림을 일으켜 처음 내가 내었던 소리보다 더 맑은
소리가 되게 하여 그의 마음과 지금의 나의 마음이 교차할 때 일어나는 전율 같은 감동, 그 감동을 키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부처님'의 정채봉이 <제비꽃>이라는 동화에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진짜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에게 좋은 뜻을
보여주고. 그 뜻이 상대의 마음속에서 더 좋은 뜻이 되어 다시 돌아올 때 생기는 빛남이다."는.
그럴 것이다. 나 또한 그런 빛남, 그런
진짜 아름다움을 위해 수필을 쓴다. 나를 맑히는 것, 맑은 소리가 나게 하는 것, 결국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나에게 있어서 수필은 내가 한
번도 가져볼 수 없었던 것까지도 그리움으로 살아있게 하고, 그런 나의 모습, 못하면 그 한 부분으로라도 가시화 시키고자 하는 생명의 작업인
것이다.
'수필은 곧 사람'이라지 않던가. 해서 나의 사람됨을 위하여 나는 한 편의 수필에 최선을 다한다. '나의 나됨'을 드러내는 수필은
어떤 모습이건 곧 '나의 모습'일 테니 말이다. <1998. 수필공원 '98.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