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목사님/Muhammad Sudhi Dharma
글/별과달
인도네시아 말랑에 사는 어떤 부인이 시간만 있으면 교회 목사님께 상담을 했습니다.
『 목사님 우리 남편 어떻게 하면 회개하고 예수 믿겠습니까? 회개하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고, 목사님이 설교하는 그 날 마침 부인과 그의 남편이 함께 출석을 하였던 것입니다.
평소에 그 부인의 상담을 늘 받아 왔던 목사님이 그 부인을 보자 갑자기 안수기도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나란히
앉아 있는 그 부부에게 다가가서 부인의 머리에 손을 얹어 열심히 축복 기도 해주고 목사님이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손이 남편 머리 위에 가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 왜 기도 중에 나의 손을 남편의 머리로 옮겼습니까?』
『 목사님 회개 할 사람은 제가 아니고 우리 남편입니다.』
『 부인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 것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겁니다.
부인의 회개가 먼저 필요하다면서요.』

그날 이후 그 부인이 결국 먼저 회개를 하고 남편도 회개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다니는 디아스포라 교회 목사님이 직접 겪으신 설교 내용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신학박사이며 현재 인도네시아 기독교당 총무입니다.
독실한 이슬람교 집안에 9남매 막내로 태어나 이름도 이슬람식인 무하마드 수디 다르마
(Muhammad Sudhi Dharma)입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 때까지 새 교복이나 새 신발을 신고 다녀 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톨릭 고등학교에 가면 공짜로 새 교복과 새 신발을 받을 수 있다는 수녀님의 말을 듣고 그는 카톨릭 고등학교로 진학하였습니다. 성적이 우수하여 수업료 없이 공짜로 다닐 수 있었지만, 카톨릭 학교라는 이유로 아버지는 학교를 가만두라고 하셨습니다. 엄청 심한 반대가 날마다 매를 동반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에는 옷을 벗겨 놓고 회초리로 때리는데 맞을 때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 울면서
『 하나님 어떻게 해서든 저는 공부를 배워야 되겠으니 도와 달라 』고 기도를 하다 보니 신앙이 더욱더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을 안 받으려고 공사장 노동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돈벌고 공부하여 졸업을 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개종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 호적을 파낸다는 말이 이럴 때 사용하면 딱 어울리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 목사님이 처음으로 개척한 교회가 지금 제가 다니는 교회입니다.
제가 처음 교회 갔을 때 1998년도였으며 창립 된지 2년, 성도들은 500여명이었습니다만 예배드릴 교회가 없었습니다.
대하 드라마에서 대조영이도 '백성만 있으면 나라는 언제든지 건국 할 수 있다'고 하더니 무하마드 목사님도 성도들만 있으면 예배당은 언제든지 건축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신 거랍니다. 그래서 해군부대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군부대에 중요한 일이 있어 사용을 못하면 호텔 강당을 빌려서 예배드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떠돌듯이
그렇게 떠돌며 1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조금 우스개 예를 든다면, 성탄절에 빵 얻어먹으러 갔다가 그때부터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도 매월 첫 번째 주일은 성찬식이 하는데 빵과 포도주를 받으려는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부흥이 되고 있을까요? 8년이 지난 지금은 성도가 5부 예배 부흥되었고 인도네시아 전국에 퍼져있는 지교회만 해도 30여개이고 라디오 방송국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큰 예배당을 지은 지금도 1.3부 예배는 해군부대 강당에서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