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내 아들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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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나 12월 22일 토요일에 뭘 입고 학교에 가지?”
“ 교복 있잖아, 그런데 그날이 왜?”
“ 학교에서 각 지방의 특색 옷을 입어야 하고 선생님이 나보고 발리 전통옷을 입어라고 하셨는데..”
“ 발리 옷이 어디 있니? 선생님께 발리 옷이 없고 한복 입겠다고 해야지. 한국 사람이 한복 입어야지…”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의 아들은 외국인들과 우리 한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international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유치원, 초등학교 모두 인도네시아 현지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카톨릭재단의 사립중학교 2학년생이다.
물론, 위의 누나 둘도 마찬가지로 초,중,고를 거쳐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다. 현지학교에는 한국인
아니 외국인이 거의 없다보니 자연히 유명해지기 마련이다. 또 한국인들의 한번 하고자 마음 먹으면
그 독한 기질을 발휘해가며 공부를 하다 보니 성적은 물론이고 모든 분야에서 당연히 앞설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의 대우 또한 매우 좋다. 쉽게 말해서 꽃이다.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의 교장은 작년에 새로 부임해 왔는데 젊은 수녀다.
작년부터 로칼이지만 인터내셔날 중학교로 지정되었다면서 이제까지 내려오던 학교의 시스템을 새로
변화시키고 행사도 크게 열었다. 작년 학기 초에는 전교생 일천 여명과 전 교직원과 서무실 직원 심지어
학교 경비아저씨들까지 같은 유니폼을 입혀 6시간의 피리 불기에 도전하여 기네스북을 받았던
대단한 교장이 아니었던가.
겉으로 보이는 행사만 크게 바꾸었는 것인지 아니면 학교 교육방침도 제대로 바꾸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작년 말에는 고입선발고사에서 전국 수석으로 전과목 만점받은 엽기적은 중학생이 나오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평일은 교복, 토요일은 사복 차림으로 등교하도록 교복제도까지 과감히 바꾸어 버렸다.
작은 키 갸날프고 개미허리를 가진 젊은 수녀, 어디서 그런 강단과 의욕, 교육에 대한 열정이 생길까 하는
의문마저 들기도 했다.
아무튼 학교 행사는 예전 누나들이 다닐때와 달리 점점 창의적이고 광범위하게 변화 되어 갔다.

12월 22일은 인도네시아의 ‘어머니 날’이다.
어머니 날은 어머니에게 감사 드리고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되어서
어머니날 행사 때문에 어머니들이 더 분주했다. 전교생들에게 각 지방의 특색 옷을 입고 어머니들도
무조건 다 참석하여야 하는데 어머니가 바쁘면 아버지라도 꼭 참석을 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이유는 행사가 끝나고 학생들의 성적표를 학부형에게 직접 전해주고자 함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발리, 자바, 수마트라, 깔리만탄, 마두라, 족자…. 등등의 전통 의상과 분장까지
해 오라고 했지만 나는 내 아들에게는 그런 옷이 없을 뿐더러 입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 전 한국에서 손님이 남편의 것으로 사 온 개량한복을 꺼내 보았다. 남편은 입고싶은 마음에
몇번이고 꺼내보더니만 아무래도 낯선 외국에서 입고 다닐 용기가 나지 않던지 그대로 장롱 속으로
넣어 두었다.
아빠의 사이즈가 과연 아들에게 맞을까? 좀 헐렁해도 그냥 입히자 라는 생각에 입혀 보니
참 잘 맞았다. 키가 작아 의자 놓고 올라가서냉동실 속의 아이스크림 거내 먹던 내 아들이, 벌써 이렇게
아빠만한 덩치로 자랐구나 하는 생각에 엄마인 내 마음은 고목에 기대듯 든든하고 뿌듯했다.
어머니 날이 되었고 나는 학교로 갔다. 학생들은 저마다 형형색색으로 옷을 입고 와 교정은 단풍으로
물든 가을산 같았다. 게다가 아이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니 마치 가을 날 낙옆이 바람에 날아다니는 것처럼
어지럽고 혼날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날 행사를 보면서 나는 참 많이 아쉬움을 느꼈다.
각 반대표들은 남여가 짝을 지어 무대위에서 수백 여명의 학부형들에게 절을 하고 어머니께 사랑의
편지를 읽었다. 우리 아들은 반장이면서도 무대 위에 올라서지 못하였다. 그 훤칠하게 잘 차려입은
내 아들에게 치마저고리로 차려입은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아들에게 발리 옷을 입히고 발리 여자와 짝을 지워 단상에 세우려고 했던 모양인데,
내가 한복을 는다고 알려으므로 다른 학생이 아들 역할을 대신하였던 것 같다.
아들에게 한복을 입히면서 왜 여학생에게 여자 한복입히는 것을 생각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자꾸만
내 가슴을 툭툭쳤다.
집에 누나들 한복 두 벌이나 있는데, 장롱 서랍에 고이 잠자고 있는데 얼마나 세련되고 아름다운
한복인데, 그 한복을 여학생에게 입혔더라면 하며 아무리 빨라도 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아쉬움이 쌓이니 화가 나려고까지 했다. 만약 그랬다면 현지인들이 예쁜 치마 저고리를 직접 눈으로
봤으면 분명히 ’장금이 장금이…’ 하면서 만져 보고 서로 함께 사진 찍자고 하였을 터인데…
그리고 내 아들과 치마 저고리 입은 여학생이 함께 단상에 올라가서 절하는 방법을 내가 가르쳤을텐데…
짝이 없었던 내 아들, 그래도 한복이 인기가 있었는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기념 사진 찍길 원했다.
엄마의 지혜가 부족한 탓으로 짝이 없었던 내 아들, 아들아 미안하다!
하지만 아들아, 난 네가 발리 옷 입고 단상에 올라가서 편지 읽어 주는 것보다 비록 짝이 없었지만
한복입은 네 모습이 너무 근사하고 멋있었단다. 사랑한다 아들아!
